-부러진 칼처럼 거칠고 투박한, 그러나 강렬한
명검을 만들어내는 이름난 칼 제조창 연봉호. 이 지역 당주의 딸인 소령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던 고아 정안과 제조창에 들어온 지 4년 된 철두를 두 사람을 놓고 누구를 연인으로 택할지 저울질한다. 이 두 사람은 소령의 연인뿐 아니라, 연봉호의 후계자 후보로도 경쟁 관계에 있는데, 결국 정안이 최종 지목된다.
하지만 이 시기 정안은 온몸이 문신으로 뒤덮인 자객 비룡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진실을 알게 되고, 연봉호를 맡는 대신 비룡과의 전투 중 반으로 부러진 아버지의 칼을 들고 복수를 떠난다. 그러나 소령이 정안을 따라오다 마적단으로부터 위험에 빠지고, 그녀를 구하던 중 정안은 오른팔을 잃게 된다.
흑두라는 고아 소녀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정안. 겨우 주막에서 잡일을 하며 흑두와 조용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이곳에서마저 마적의 습격을 받고 집이 불타는 시련을 겪는다. 그러던 중 집에 숨겨진 검법에 관한 비서를 발견한 그는 땅에 묻어뒀던 아버지의 칼을 꺼내 다시 수련에 들어간다. 어느새 고수가 된 정안은 다시 찾아온 마적단을 물리치고, 정안을 찾아 나선 소령과도 우연히 재회하여 다시 한번 마적단으로부터 그녀를 구한다. 정안에게 완패한 마적단은 분노해 정안과 연봉호에 복수를 하려 하고, 전설의 비룡에게 연봉호의 모든 사람들과 정안을 죽여줄 것을 의뢰한다.
오우삼과 더불어 1980~90년대 홍콩 영화 황금기를 이끌었던 서극의 1995년 연출작, ‘칼’의 줄거리다. 서극의 이름값에 기대려는 듯 다시 유명 감독이나 배우의 이름을 붙이던 유행을 따라 국내 개봉된 정식 이름은 ‘서극의 칼’이었다. 그만큼 동방불패, 황비홍 등으로 이름을 날리던 서극의 존재감은 대단했고, 이번에는 또 어떤 화려한 액션을 보여줄지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흥행은 좋지 않았다. 홍콩 영화계에서도 가장 대중적 감각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그의 전작과 이 작품은 확연히 달랐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액션이나 양념처럼 재미를 더하는 가벼운 유머, 포스와 멋을 보여주는 선한 강자의 여유가 사라졌다. 대신 건조하면서도 눅눅한 공기와 시각적 꾸밈을 배제한 거친 액션, 음울하고 처절한 분위기와 인물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것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하고, 서극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한다. 황금기 매끈한 성공가도로 늘어선 서극의 필모그래피 라인에서 영화 ‘칼’은 어느 지점에선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 둘출감을 주는 작품이다. 그 돌출감은 공교롭게도 이 작품의 정체성이자 스타일의 방점인 ‘거칢’과 맥을 같이한다.
생존, 그 처절함에 대하여
이 영화는 장철 감독의 영화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장철 감독과 왕우 배우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한 외팔이 검객 시리즈로 당대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홍콩 무협 액션의 역사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의와 명예를 위해 무림의 세계에서 결투와 복수를 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협지 속 무인들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도 자연스럽게 내용에 담긴다.
하지만 서극의 칼은 큰 줄기를 가져오면서도 핵심적인 사건과 인물들의 처지, 생각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아버지의 복수를 꿈꿨지만 팔을 잃고 좌절한 정안은 과거를 잊고 새로 시작하려 하지만, 결국 마적 떼로 인해 그마저도 무너진다. 이때 그 앞에 나타는 무림비급은 아버지 복수를 일깨우는 장치가 아니라, 더 이상 당하지 않기 위한 생존의 의지로 작용한다.
소령의 아버지는 친구를 죽인 비룡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은 뒤로 접어두고 칼 제조창을 꾸려간다. 그리고 철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시장의 창녀 아헤는 뭇남자의 희롱 속에도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웃음과 혼자 있을 때의 자조적이며 자기 체념적인 싸늘한 태도가 보여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평범한 우리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소령의 내레이션을 따라 흘러가는데, 그 안에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들이 중요한 상황에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결국 이 세계의 법칙을 이해했다.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라는 멘트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떤 꾸밈도 없이 칼처럼 냉철하게 정의한다.
이런 작품의 정서는 액션 연출에서도 나타난다. 하늘을 날고, 무공을 써서 사람을 날리고, 혈을 눌러 제압하는 판타지적인 장면은 없다. 하늘을 나는 것 같다고 표현되는 인물이 있고, 실제 그러한 착각이 일만큼 역동적인 장면들이 있지만, 그것은 굉장히 거칠고, 위협적이고, 처절하게 그려진다. 팔 하나가 없는 정안이 스스로 몸을 묶고, 입에는 비서를 물고, 오로지 회전의 힘만으로 칼의 속도와 위력을 높이기 위한 훈련을 하는 장면은 그 비장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영화의 러닝타임 안에서 정안이 경지에 다다르기까지의 시간은 매우 짧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신에 분노하지만, 곧장 길을 찾고, 이내 경지의 속도에 다다른다. 훈련을 통해 강해지는 과정, 이를 통해 느껴지는 보람과 감동에 기반한 쾌감을 이 영화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남을 수 있게 강해진 자와 그 이전의 자로 상황을 구분할 뿐이다.
웃통을 벗고 땀에 젖어 열기 가득한 제조창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날 것 그대로의 야성을 떠올리게 하며, 핸드헬드로 찍은 액션은 거칠지만 생생하고 때로는 불친절하게 인물의 얼굴로 달려들거나 갑작스러운 속도감을 보여준다. 공간은 사막 같은 붉은 모래와 퍼붓는 폭우에 인물들을 방치하는가 하면,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명징하게 날이 설 정도로 빛이 차단된 어두운 영역을 오가며 극단의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오로지 생존이라는 단순한 메시지를 두고 스토리에서 영상까지 그 단어의 의미와 느낌을 구현하는데 전념한 거칠지만 깔끔하고 강렬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