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기 사진작가
동국대 평교원 교수
스튜디오아이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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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놀란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 중 하나가 바로 배달음식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외식 대신 음식 배달 및 포장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소비자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음식 배달 서비스산업 규모는 급격히 성장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짜장면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배달음식의 효시는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시대부터 존재했던 배달음식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배달음식으로 기록된 효종갱과 냉면이다. 두 음식의 공통점이라면 주로 과음 후의 해장 음식으로 시켜 먹었다는 것이다. 6·25전쟁 이후 부산에도 새벽을 열던 배달음식이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재첩국이다. 이 재첩국은 낙동강 인근 사상구 엄궁동 재첩국 마을에서 밤새 대량으로 끓여낸 재첩국을 ‘재첩국 아지매’가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부산 전역의 골목을 누비며 해장용으로 팔았다. “재칫국 사이소~ 재칫국~” 하고 외치는 ‘재첩국 아지매’가 없으면 부산의 아침은 오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효종갱은 조선시대에 새벽을 열며 배달하는 해장국이었다. 한양 사대문내 고관대작들이 거주하던 ‘북촌’에는 과음한 양반들의 속을 편하게 풀어주고 몸을 든든히 하던 음식이 있었다. 바로 ‘효종갱(曉鐘羹)’이다. 얼핏 들어보면 조선 17대 임금 효종과 관계있는 음식인듯싶지만 아무 관계가 없다. 효종갱은 ‘새벽(曉)을 알리는 종(鍾)이 울릴 즈음에 먹는 국(羹)’이란 뜻이다.
‘새벽종이 올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을 지닌 효종갱은 한양에서 20여 킬로미터 떨어진 남한산성 일대, 경기도 광주 인근인에서 밤새 국을 끓여 새벽녘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사대문 안의 양반가에 배달이 됐다. 옛날 한양성은 밤 10시가 되면 성문을 걸어 잠그고 새벽 4시에 보신각 종소리가 울려야 성 안으로 출입할 수 있었다.
효종갱은 겨울에도 큰 항아리에 담아 식지 말라고 솜을 똘똘 말아 두른 뒤 배달꾼이 지게로 직접 지고 날랐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도 비쌌는데 효종갱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양반들의 새벽 속 쓰림을 달래주는 음식으로 인기가 높았다.
몇몇 기록을 살펴보면 효종갱과 더불어 배달시켜 먹던 음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금도 여름이면 즐겨 먹는 냉면이다. 지금도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고 해서 주당들은 술 마신 뒤에는 냉면을 먹는다. 냉면은 조선 중기부터 먹어온 우리나라 전통 음식으로 메밀가루를 반죽해 면을 뽑고 동치미나 꿩 육수 등을 차게 해 말아 먹던 음식이다. 1849년 홍석모가 쓴 세시 풍속집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겨울철 제철 음식으로 메밀국수에 무김치, 배추김치를 넣고 그 위에 돼지고기를 얹어 먹는 냉면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배달 음식은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며 더욱 다양하고 편리한 시스템을 갖추어 일상화 과정을 밟는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배달업계의 자전거 보급이다. 자전거가 보급되자 배달 음식의 배달 범위는 넓어지고 배달 시간은 짧아졌다. 한 손으로는 자전거 핸들을, 다른 한 손에는 냉면 여러 개를 들고 달리는 배달원의 묘기에 가까운 모습은 ‘신동아(新東亞)’ 1933년 6월호에 실린 삽화를 통해서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배달음식은 전화가 개통되고 전화기가 보급되면서 고급 음식점을 중심으로 전화 배달 주문이 점차 늘며 배달음식은 산업의 한 장르로 자리를 굳혀간다. 냉면과 설렁탕이 배달 대상 음식으로 여름에는 냉면이, 겨울에는 설렁탕이 주로 배달되었다. 조선 시대 배달음식의 기원으로 기록되고 있는 효종갱과 냉면의 자리를 지금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이 대신하고 있다. 그 시대의 자전거 배달꾼이 배달 라이더로 진화하고 있는 요즘, 가까운 미래에 하늘을 나는 드론의 등장도 멀지 않은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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