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JTBC의 예능 프로그램인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이하 슈가맨)’에 가수 리아가 등장했다. 슈가맨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지금은 TV에서 볼 수 없는 가수들을 만나고 그들의 음악을 현대식으로 리메이크 하는 프로그램이다. 슈가맨이라는 이름은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유래된 말로, 짧은 시간 큰 임팩트를 남기고 사라져버린 가수를 의미한다. 흔히 사용하는 ‘원 히트 원더’와도 유사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리아라는 가수는 슈가맨이라고 불리기에 다소 애매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슈가맨 출연곡인 ‘눈물’외에도 1집 데뷔곡 ‘개성’부터 활동이 뜸했던 2000년대 드라마 OST로 발표한 ‘내 가슴에게 미안해’까지 제법 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는 가수이기 때문이다. 데뷔 당시부터 힘 있고 개성 넘치는 창법과 이에 걸맞은 스포츠 스타일의 짧은 머리로 등장한 리아는 ‘남들과 똑같이 살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담은 ‘개성’이라는 노래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노래하는 스타일과 실력, 무대 매너, 패션, 타이틀곡의 성격까지 한국 록음악계와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만한 파워풀한 신인 여성 로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필자가 오랜만에 TV에서 리아를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곡은 데뷔곡 ‘개성’도, 가장 최근의 히트곡인 ‘내 가슴에 미안해’도, 슈가맨의 출연곡인 ‘눈물’도 아니었다. 그녀의 1집에 수록된 숨겨진 명곡 ‘네 가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개성 넘치는 신인 록가수가 보여준 의외의 감성

리아는 첫 등장부터 충격인 가수였다. 그러나 ‘네 가지 하고 싶은 말’은 그녀의 등장보다 더 충격이었다. 애절한 느낌의발라드는 흔한 장르이지만, 파격적이었던 리아의 캐릭터가 그런 노래를 들고 나왔을 때는 역설적으로 기존의 파격적인 그녀의 캐릭터보다 더 충격적인 느낌이었다. 특히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고 에너지가 넘칠 것 같은 그 젊은 가수의 내면에 숨겨진 슬픈 이야기, 혹은 감성을 마주하는 것은 다른 일반적인 슬픈 노래를 하는 가수들을 보았을 때의 그것과는 완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리아는 자신의 데뷔 정규앨범에 담긴 전 곡을 직접 작사했다. 앨범 타이틀 또한 그런 의미에서 ‘Diary’로 붙였다. 리아 1집의 모든 곡은 그녀만의 생각과 가치관,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중 이번에 다룰 ‘네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친구의 죽음과 그로 인한 슬픔을 다룬 노래다. 가사를 보면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방학 동안 소중한 친구 한 명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맞이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두고 슬픔에 빠진 화자가 스스로 그 슬픔을 극복해 가는 내면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노래는 그녀가 초등학교 때 친구가 세상을 떠난 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직 사춘기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어린 나이에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경험은 누구라도 쉽게 극복하지 못할 경험이다. 친구의 죽음이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대면했을 때, 세상은 ‘눈물은 소용없잖아’라고 말한다. 흔히 하는 말로 ‘산 사람은 살아야지’와 같은 맥락으로, 믿을 수 없는 충격, 그리고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마주한 아이에게 세상은 어서 현실로 돌아와야 함을 알려준다. 화자는 그 상황에서 스스로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절대 ‘너’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 그녀가 기억하는 그 모습으로 자신을 반겨달라고 말한다. 특히 인상적인 가사는 ‘슬픔도 기쁨도 지나치지 말라던 너의 말, 영원히 기억할 거야’라는 부분이다. 이 곡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하는 이 가사는 일종의 위로처럼 친구가 생전에 남긴 메시지를 받아들이며 친구를 잃어버린 슬픔을 극복하는 결정적인 지점이 된다. 그 메시지를 통해 내면에서 서서히 슬픔을 가라앉히며, 이승에서 친구를 계속 기억하고 추억함으로써 부재 중인친구의 존재와 의미를 계속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상실을 상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 자신만의 새로운 가치로 승화시키는 예술적인 감성이 담겨있다. 이 노래는 슬픔에 대한 노래인 동시에 한 편으로는 유년기 한 인간의 성장을 그린 노래이기도 하다.

상실, 이해, 다짐, 그리고 성장

‘성장’은 많은 서사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테마다. 성장 스토리는 비단 유년기의 주인공이 일정 시간이 거치면서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서사물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한 명의 인간이 내면적인 성숙, 또는 육체적 성장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면 어떤 이야기든 성장 스토리가 될 수 있다.

‘네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어린 나이에 친구를 저 먼 세상으로 떠나보냈던 기억과 내면에서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슬픈 가사와 멜로디에 담아낸 일종의 성장 스토리다. 인간은서로 간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3개의 축을 갖고 있다. 가족, 연인, 친구가 그것이다. 가족은 절대로 끊을 수 없는 태생적이며 영구한 관계이며, 때문에 그 존재와 개념 자체로 인생에서 큰 무게를 갖는다.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감정으로 맺어진 연인의 관계는 어쩌면 가족보다 더 친밀할지도 모를 특이한 관계다. 특히 연인은 상호 독점적으로 맺어지는 관계라는 점에서 관계가 단절됐을 때의 상실감은 어떤 감정보다 특별하게 다가온다. 많은 대중문화의 스토리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가 크다. 친구는‘나’를 중심으로 봤을 때 여러 경로에서 다중적으로 일어나며, 내가 선택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쉽게 관계가 정리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과 연인 관계의 무게감과 압박감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나와 가깝게 속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실제스스로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가족이나 연인이 아니라 친구일 수 있다.

나와 가장 가깝고 유사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 존재와의 일상적인 교감은 우리 일상의 정서와 문화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그런 친구의 죽음은 내 자아를 이루던 한 축이 무너짐을 의미하며, 그 축은 온전히 그대로 재구축될 수 없다. 그 상실된 자아의 한 축을 자신의 내면에서 회복하며 새로운 축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곧 친구의 죽음을 통해 성숙해지는 한 인간의 성장 스토리가 된다. 리아의 ‘네 가지 하고 싶은 말’은 슬픈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친구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며 겪었던 갈등과 치유의 과정을 하나씩 밟아나가며 슬픔 이상의 감동과 가치를 만들어낸 하나의 훌륭한 성장 스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