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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기 작가의 사진이 있는 이야기] 샐러리맨의 퇴근길 안식처 무교동 옛 이야기
 
한남기 동국대학교 평교원 교수   기사입력  2017/04/05 [18:10]

▲ 사진1. 모전교 리플렉션     © 상조매거진

무교동의 동명은 조선시대 이 부근에 무기의 제조와 관리를 맡아 보던 군기사가 있어 모전교 부근에 있던 모교동과 구별하기 위해서 무교동으로 이름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모전교는 과일을 파는 모전이 근처에 있다 해서 이름이 유래된 다리인데 무교동과 서린동 사이의 청계천 위를 연결해 주는 다리였다. 현재 무교동의 위치는 서울시청 뒷편을 기점으로 좌측으로는 청계광장 우측으로는 SK본사 인근까지 역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나도 어느새 반세기를 훌쩍 넘게 살다보니 7080 시절이 그리워진다. 지금은 강남 강북 할 것 없이 퇴근 후 즐길 곳이 허다 하지만 60년대부터 80년대 초반 까지는 무교동 일대가 유흥가의 대명사였다. 그 당시 무교동은 명동과 다동 등과 더불어 4대문 안의 대표적인 유흥가로 손꼽혔었다. 술집과 음식점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골목길이 많아 교통이 불편 하였으나 광교에서 세종로까지 큰 길이 뚫리면서 무교동은 새로운 면모로 재탄생 하였다. 1980년대 이후 도심지 재개발지구로 지정되어 대형건물들이 들어섬에 따라 점차 옛 정취를 잃어가고 있다.

 

예전에 무교동에는 화려한 극장식 술집을 비롯하여 유흥 주점도 많았지만 역시 무교동의 대명사는 퇴근 후 샐러리맨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골목길에 늘어선 소박한대포집들 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6시 퇴근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던 시절 이었다. 통금 시간에 쫓기며 한잔 하는 그 시간은 하루의 노고를 위로하는 꿀처럼 달콤했던 그 시절의 작은 호사였다. 무교동의 주인공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 힘든 줄도 모르고 묵묵히 일만 했던 젊은 청춘과 자랑스러운 대한의 아버지들 이었다.


▲ 사진2. 무교동 SK사옥     © 상조매거진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에는 크리스마스이브와 새해를 맞이하는 12월31일 밤이 되면 통금이 해제되어 그야말로 1년에 2번만 즐길 수 있는 호사스런 신천지가 펼쳐지곤 했다. 물론 대표적인 유흥가인 무교동도 마찬 가지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디 상상이나 하겠는가? 자정부터 새벽4시 까지는 집 앞조차 나갈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1945년 9월부터 37년간 계속된 야간 통행금지도 자유를 갈망하는 민심에 따라 결국 1982년 1월 5일 새벽 4시를 기해 막을 내리고 만다.

통금 시간이 사라지면서 개인의 삶도 많이 바뀌었고 무교동 또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70년대 후반부터 강남 신사동 일대를 중심으로 신흥 유흥가가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무교동의 명성은 끊이질 않았다. 옛 정취가 고스란히 묻어나던 무교동의 대포집들도 호프집을 비롯하여 카페, 레스토랑 등 다양한 형태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80년대 들어 디스코 붐이 일어나면서 강남에는 스튜디오80가 디스코의 메카로 태동 하였고 무교동에는 그에 못지않은 유명세를 누리던 코파카바나가 생겨났다. 이처럼 무교동은 대한민국 유흥 1번지로 그 명성을 쌓았던 곳이다.

 

필자도 대학시절에 무교동과 관철동 일대를 즐겨 찾았다. 그때는 호프집을 많이 찾았는데 입 안 가득 맴도는 호프의 향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특히 얼음같이 차디찬 생맥주의 첫 모금은 백미중의 일미였다. 그 당시 500CC 생맥주 한 잔 값이 250원 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생맥주 한잔에 봉지김 하나면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호사중의 호사이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무교동의 추억 중에는 아스라이 생각나는 호프집의 추억이 있다. 때는 1982년 어느 가을날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이 있던 날이었다. 상대는 우리의 영원한 맞수 일본. 그때 나는 무교동 사거리 인근에 있던 한 호프집에서 생맥주 한잔과 노가리쯤으로 기억되는 안주 한 접시를 놓고 야구 중계방송을 보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8회 초까지 일본에 0-2로 지고 있는 상황 이었다. 답답한 순간순간이 흐르고 드디어 8회 말 한대화 선수의 3점 홈런이 터졌다. 3-2 역전승, 호프집에는 환호성이 가득했고 그 짜릿했던 순간은 아직도 기억되는 무교동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 사진3. 한서린 광통교     © 상조매거진
 

무교동에는 오래된 음식점들이 지금도 그 맥을 잇고 영업을 하고 있다. 무교동 하면 생각나는 음식 중 첫 번째는 아무래도 무교동 낙지가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SK본사 옆에 있는 유림낙지는 1960년대부터 무교동을 지키고 있는데 나는 요즘도 매운 낙지덮밥이 생각날 때면 이 곳은 찾는다. 특히 이집의 칼칼하고 시원한 조개탕은 매콤한 낙지와의 콜라보가 금상첨화 이다. 또한 오래된 음식점을 꼽는다면 단연코 용금옥 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추어탕 전문점 용금옥은 1932년부터 무교동을 지키고 있는데 1973년에는 남북조절위 제3차 회의에 참석한 북한의 박성철 부주석이 용금옥의 안부를 물어 큰 화제가 되기도 한 곳이다.

 

따뜻한 봄 햇살이 하늘거리는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번 주말에는 몸에 좋은 비타민D를 광합성 할 겸 무교동을 찾아보자. 매운 맛의 캡사이신은 사람의 기분까지 즐겁게 만든다고 하니 매콤한 낙지덮밥과 시원한 조개국의 매력에도 빠져보자. 그리고 청계천 모전교 옆에 있는 흔히들 광교라고 불려지는 광통교를 찾아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의 슬픈 한이 서린 역사 이야기도 알아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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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05 [18:10]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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