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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기 작가의 사진이 있는 이야기/600년 세월을 함께한 서울의 물길 청계천
 
한남기 사진작가/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기사입력  2018/06/07 [09:38]

▲ 청계천의 시발점 청계광장     © 상조매거진


태조 이성계는 1394년10월(태조3년)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개성)에서 한양(서울)으로 수도를 옮기는데 이를 한양천도 라고 한다. 태조는 풍수지리에 능한 무학대사에게 새 도읍지를 찾아보라 명하여 무학대사가 한양으로 내려와 왕궁 터를 정한 곳이 처음에는 왕십리였다.


그때 한 노인이 소를 몰고 대사의 앞을 지나며 “이놈의 소가 미련하기는 꼭 무학 같구나. 왜 바른 길로 가지 않고 굽은 길로 가느냐”며 소를 꾸짖었다. 대사가 어이가 없어 노인에게 왜 무학이 미련한지 자초지종을 묻자 노인은 “요즘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을 놔두고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지 않겠소” 라고 답했다.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공손히 절을 올리며 다시 물었다. “제가 바로 무학이옵니다. 제 눈으로는 이 곳이 이 나라의 도읍지로 제격인 것 같은데 이 곳 보다 더 좋은 곳이 있는지요” 했더니 노인은 “이곳에서 서북쪽으로 십리를 더 가시오” 라고 했다. 무학대사는 노인의 말에 따라 십리를 더 갔더니 그 곳이 진정 최고의 명당 자리였다.


그 곳이 바로 경복궁 터였으며 노인이 십리를 더 가라고 일러준 곳의 지명이 말 그대로 왕십리(往十里)가 되었다.


▲ 복개공사 초기의 청계천     © 상조매거진

 

당시 서울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이고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는 분지였다. 그 때 수도 서울을 가로지르는 물길이 바로 청계천이다. 봄, 가을에는 물이 말라 바닥을 드러냈고 여름에 큰 비가 내리면 범람하는 하천이었다. 제대로 된 치수 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청계천이 범람해 인근 노점과 민가에 피해를 입히기 일쑤였다. 1406년 태종은 청계천 정비를 시작하여 자연 상태의 하천 바닥을 긁어내어 물길을 넓히고 하천 양쪽 기슭에 둑을 쌓았다.


1411년에는 하천정비기구 ‘개천도감’을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하천 정비를 시작했다. 1412년에는 무려 5만 2800명의 인부를 동원해 공사를 했고 이때 건축된 다리가 청계천 복원공사로 모습을 드러낸 광통교, 혜정교 같은 돌다리다. 또한 1441년(세종23년)에는 마전교 서쪽 수중에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수표를 만들어 눈금을 새겼다. 그 당시 공사로 인해 청계천의 본래 이름인 ‘개천’이 생겨났고 지금의 명칭인 ‘청계천’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붙여진 이름이다.

 

청계천의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 창의문 부근의 정종수 경사의 순직 비에서 북악산 정상 방향으로 약150미터 지점에 있는 약수터라는 주장이 가장 유력하다. 청계천은 서울 종로구와 중구를 가로질러 왕십리까지 이어지는데 그 길이가 무려 10.84km 이다. ‘맑은 개울’ 이라는 청계천은 서울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빨래터였다. 1958년 6월에 복개공사가 시작됐고 1976년에는 그 위에 고가도로가 완공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청개천은 복개공사가 착수된 지 47년 만에 청계천 복원 사업이 시작되어 청계천이 다시 제 모습을 드러냈다.

 

▲ 청계천 정조반차도 벽화     © 상조매거진
 

2003년 7월부터 청계천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부터 성동구 신답철교 까지 5.8km 구간을 복원했다. 청계천은 2005년 10월 1일 2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청계천에 놓여 진 총 22개의 다리를 중심으로 정조반차도를 비롯한 역사적 자료를 복원한 도심 속 하천으로 개통하였다. 청계천이 복원되자 개장 한 달 만에 64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복원된 청계천은 서울 도심의 명소로 자리 잡았고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는 상징적인 공간이 됐다.

 

6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함께한 청계천에는 문화유산도 다양하다. 1760년 준천 당시에는 청계천에 모전교,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하량교, 효경교, 마전교, 오간수문, 영도교 등 9개의 다리가 있었다. 현재의 중구 서린동 부근에 있는 모전교는 당시 과일 파는 가게들이 많았던 지역의 특징을 이름으로 붙인 것이다. 또한 도성 중심을 통하던 장통교는 현재의 장교동 한화빌딩 자리에 있다. 특히 이곳은 청계천의 본류와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청계천에서 가장 유명한 다리 가운데 하나인 수표교는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져 있다.


마전교는 세종 때 만들어진 수위를 측정하는 수표석이 있다고 해서 이름을 수표교로 바꿔 부르게 됐다. 청계천에는 꼭 둘러봐야 할 ‘청계팔경’이 있다. 제1경은 청계천의 시작점인 청계광장 이고 제2경은 광통교로 태조 이성계의 비 신덕왕후의 묘지석을 거꾸로 쌓아 만든 다리다. 제3경은 정조반차도, 제4경은 패션광장, 제5경은 청계천 빨래터 이다.

 

서울 시민 2만 명이 직접 쓰고 그린 타일로 꾸며 놓은 소망의 벽이 제6경, 철거된 청계 고가도로의 교각 세 개를 기념으로 남겨 놓은 존치 교각과 터널 분수가 제7경이고 제8경은 청계천 제일 끝에 있는 버들습지 이다. 이제 꽃피는 5월이 오면 따사로운 햇살 받으며 거닐면서 소소한 일상을 청계천을 찾아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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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07 [09:38]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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