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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기 작가의 사진이 있는 이야기]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을 지켜본 통곡의 미루나무
 
한남기 / 사진작가, 동국대학교 평교원 교수   기사입력  2019/10/17 [13:34]

 

대한민국을 식민지화 한 일본 제국주의는 의병 탄압을 목적으로 1908년 10월 21일 경성감옥을 신축했다. 그 이후 1912년 9월 3일 서대문감옥으로 명칭을 개명하고 1923년 5월 5일 에 서대문형무소로 또 다시 개칭 되었다. 일제는 이 곳을 자유를 표방한 근대식 감옥이라 선전 했지만 실제로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저항했던 세력을 일반 대중과 분리하여 감금하고 처형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뒤에도 이 곳은 교도소, 구치소로 활용 되었다. 그 이후 1987년 교도소 시설은 경기도 의왕시로 옮기고 역사적인 이 곳을 박물관, 문화재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서대문 형무소의 유네스코 세계문회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1908년 10월 21일 정오 구한말 대법원장을 지냈던 의병장 허위가 이 곳 교수대에 오른 최초의 희생자였다. 광복 직전 1944년에는 2,890명이 수용되어 있었으며 1919년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을 포함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수용 되었는데 유관순 열사도 이 곳에 수용되어 17세의 꽃다운 나이로 옥사 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서울 형무소로 명칭을 바꾸고 반민족행위자와 친일세력들이 대거 수용 되었다. 또한 좌익계열의 인사들도 체포되어 수감되었는데, 김원봉, 김성숙도 수감된 적이 있으며, 여운형도 수감된 적이 있었다. 1980년에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도 이 곳에서 사형 당하였다.

 

높다란 담장과 망루로 둘러 쌓여있는 서대문 형무소의 대표적인 시설로는 전시관, 중앙사, 12옥사, 공작사, 한센병원, 순국선열추모비, 유관순 지하 옥사, 시체를 내보내던 시구문과 사형장이 있다. 특히 아픔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사형장은 형무소 내에 5미터 높이의 울타리로 둘러싸여 외부와 완전 격리되어 있다. 지하1층 지상1층으로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물인 이 곳에는 사형 장치로 설치된 교수형 집행을 위한 개폐식 마루판과 교수형을 위한 굵은 밧줄이 천정에 매어져 있고 사형수 뒤편에는 마루판을 개폐하는 레버가 있다. 마루판 아래 지하 공간에는 시신 수습실이 있어서 사형수의 사망 여부를 확인 하였다.

 

 

서울 중구 퇴계로 끝자락에 가면 옛날 시체를 내보냈다는 시구문, 수구문이라 칭하는 작은 문이 하나 있다. 이 문은 조선시대 건축한 4대문 사이의 4소문 중 하나로 1719년 문루를 세워서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이 곳 서대문 형무소에도 시구문이 있는데 사형장 뒤 편 외진 구석에 사형집행 후 시신을 외부로 반출하기 위한 작고 긴 터널의 입구에 오래된 철문이 양쪽으로 개폐되어 있는 곳이 바로 서대문 형무소 시구문 이다. 그 길이가 200미터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해방 이후에도 사용되었으나 1987년 구치소 철거 계획에 따라 입구를 봉쇄하였다가 1992년 독립공원 조성 공사 때 발굴하여 현재 40미터를 복원해 놓았다. 작금의 사상 초유의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하 수상한 시절, 나는 나의 사진작중 하나인 ‘통곡의 미루나무’가 문득 생각났다. 미루나무는 예사롭지 않은 나무일까? 우리나라에는 범상치 않은 미루나무 두 그루가 있다 그 중 하나는 판문점에 있고 다른 하나는 서대문 형무소에 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유엔군 측 초소 부근에서 시야를 가리는 나무의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군에게 도끼로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다. 사건 발생 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까지 발전했으나 북한의 김일성이 사과문을 유엔군 측에 전달함으로써 일단락됐다. 바로 이 나무가 미루나무였다.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에도 일제 강점기 시절 아픈 역사 속에서 한 맺힌 사형수들의 마지막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두 그루의 미루나무가 있다. 사형장을 둘러싸고 있는 높다란 돌담을 사이에 두고 안쪽에는 작은 미루나무가 있고 담장 밖에는 그 보다 키가 훨씬 큰 미루나무가 있다. 이 미루나무를 일명 '통곡의 미루나무'라고 부르는 사연은 사형수들이 사형장에 들어가며 마지막으로 이 나무 아래서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가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억울해 하며 이 나무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는 데에서 유래 되었다.

 

내가 통곡의 미루나무를 촬영할 당시에는 크고 작은 두 그루의 미루나무가 있었으나 사형장 담장 안 작은 미루나무는 크지를 못하고 작은 모습으로 담장 안 한쪽 귀퉁이를 지키고 있었는데 결국 작년에 고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키 작은 통곡의 미루나무는 왜 고사 하였을까... 대한독립을 외치며 한 줌 흙으로 돌아간 애국선열들의 한이 서려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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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0/17 [13:34]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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