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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기 작가의 사진이 있는 이야기] 호랑이가 자주 출몰 하였던 서울 인왕산
 
한남기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   기사입력  2019/12/05 [09:28]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4개의 내산과 4개의 외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서남북 순으로 4개의 내산을 열거하면 낙산, 인왕산, 남산, 북악산이고 4개의 외산은 용마산, 덕양산, 관악산, 북한산이다. 서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8개의 산중에서 다소 생소한 이름의 산이 몇 개 있다.

 

낙산하면 낙산사가 있는 강원도 낙산을 생각하게 되는데 서울의 낙산은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돌산으로 인왕산과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산이다. 낙산은 그 모양이 낙타의 등과 같다고 하여 낙타산 또는 낙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용마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차산의 최고봉 이며 덕양산은 행주산성이 있는 나지막한 산을 말한다.

 

인왕산은 종로구와 서대문구 홍제동의 경계에 있는 해발 338.2m의 바위산 이다. 풍수지리로 볼 때 경복궁의 좌청룡이 낙산이고 우백호가 인왕산 이다. 그래서 일까. 우백호 인왕산에는 유독 호랑이가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인왕산 이라는 이름은 이 산에 인왕사(仁王寺)라는 절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인왕산의 능선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남쪽으로 행촌동과 사직동이 있고 동쪽으로 옥인동, 청운동으로 이어지며 북쪽 능선의 자하문 고개를 통해 북악산과 연결된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인왕산은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많아 다양한 이름의 바위가 많다. 2개의 거대한 바위가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선바위, 모자를 닮은 모자바위, 돼지를 닮은 돼지바위, 두꺼비바위, 코끼리바위, 달팽이가 기어가는 모습을 한 달팽이바위가 유명하다. 이뿐 아니라 호랑이가 살았던 산답게 호랑이 굴이 있는 남쪽 능선에는 호랑이바위가 있고 삿갓 모양의 삿갓바위가 인왕산의 정상이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인왕산(仁王山)의 이름을 어진임금을 뜻하는 仁王의 임금 자를 왕성할 자로 바꾸어 仁旺山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또한 인왕산은 북한 특수부대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날인 1968121일 이후 출입이 통제 되었다가 1993325일 정오부터 다시 개방되었다. 조선시대 까지만 해도 인왕산에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을 해치며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인왕산 호랑이는 경복궁뿐 아니라 창덕궁 후원에까지 들어와 소란을 피우고 민가에 침입하여 사람을 물어갈 정도였다.

 

문헌에 의하면 호랑이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수 백 명에 달하였고 조정에서는 군대를 출동시켜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을 벌였던 것으로 기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인지 지금도 인왕산 모르는 호랑이는 없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인왕산 고개 이름이 무악재이다. 무악재에는 호랑이가 자주 출몰 하였는데 이 고개를 넘으려면 호랑이를 피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모여 고개를 넘나들었다. 이 때문에 이 고개를 모아재라고 부르다가 그것이 현재의 무악재가 되었다.

 

▲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포푁된 호랑이     © 상조매거진


사람에게 무서운 존재로만 여겨지던 인왕산 호랑이에 대한 아름다운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 옛적에 인왕산 기슭에 박태성 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는 대단히 효심이 깊은 효자 중에 효자였다. 그는 소년 시절 아버지 박세걸이 병으로 돌아가시자 장례를 치른 후 3년간 시묘를 했고 이후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북한산 기슭에 있는 아버지의 묘를 찾아 아침 문안을 드렸다. 어느 추운 겨울날 그날도 어김없이 아버지 묘를 찾아 무악재 고개를 넘는데 인왕산 쪽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불쑥 나타나 길을 막았다. 그런데 호랑이는 으르렁 거리기는 커녕 박태성을 향해 자기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을 하였다. 박태성이 올라타자 호랑이는 달리기 시작해 아버지의 묘 앞에 내려주었다. 그 후로 40여 년간 매일 무악재 고개에는 호랑이가 박태성을 기다리고 있다가 아버지 묘까지 데려다 주고 데려오기를 계속 하였다. 세월이 흘러 박태성도 늙어 세상을 떠났다. 박태성의 상여가 지나가는 길에 늙은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어흥하며 큰 소리로 울었다. 그리고 얼마 뒤 박태성의 무덤 앞에 쓰러져 죽은 호랑이가 발견 되었다. 사람들은 박태성과 호랑이의 기가 막힌 우정에 탄복해 박태성의 무덤 곁에 호랑이를 묻어주었고 박태성의 제사를 지내러 올 때면 호랑이 무덤에도 제사를 지냈다. 이 호랑이와 효성이 지극한 효자 이야기는 고양시 덕양구 효자동의 동네 이름에 관한 유래가 되었으며 지금도 고양시 동쪽 북한산 아래 제청말 마을에는 조선조 후기의 효자인 박태성과 아버지 박세걸, 그리고 40년간 효자 박태성과 아름다운 연을 이어온 인왕산 호랑이의 묘가 함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호랑이를 포획한 것은 남한에서는 1921년 경주 대덕산, 북한에서는 1924년 강원도 횡성에서 포획 되었다. 민화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우리나라 호랑이를 이제는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1998년 서울시에서는 시 캐릭터로 왕범이를 확정한 바 있다. 인왕산의 과 호랑이의 우리말인 을 결합시켜 인왕산 호랑이를 뜻하는 이름인 왕범이를 만든 것이다. 경복궁의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은 전체적인 산세를 볼 때 흡사 호랑이가 웅크린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왕산 하면 흔히 호랑이를 떠올리고 인왕산에는 호랑이와 얽힌 전설이 유독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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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05 [09:28]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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