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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기 작가의 사진이 있는 이야기] 청와대 옆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칠궁’을 아시나요
 
한남기 동국대학교 평교원 교수   기사입력  2020/05/06 [09:17]


서울에는 조선의 궁궐 중 첫 번째로 지어진 경복궁을 비롯해서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이 있다. 4개의 궁궐을 조선시대 4대 궁이라고 한며 조선의 5대 궁은 여기에 유사시 왕이 본궁을 떠나있을 때 정사를 보던 임시궁인 경희궁이 포함된다. 경희궁은 많이 훼손되어 사람들에게 많이 잊혀 진궁이었으나 최근 점차 복원되면서 경희궁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리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작은 궁이 하나 있다. 이 궁이 바로 청와대 서쪽 끝에 있는 칠궁이다.

 

청와대 보안 문제로 일반인 공개가 금지되어 있던 칠궁은 201861일부터 일반인의 관람이 허용 되면서 그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칠궁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궁화 동산에 있는 칠궁 안내소로 가야한다.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확인한 후에 도로를 건너편 칠궁에 들어갈 수 있다. 관람 일자는 일요일, 월요일을 제외한 주 5일이며 관람 요금은 무료이지만 입장 시 시간제한이 있다. 칠궁 바로 옆이 청와대이다 보니 보안이 철저해서 무조건 30분 동안은 해설사와 함께 다니며 관람을 해야 하고 그 이후 남은 시간 20분은 자유 관람을 할 수 있다. 관람 방법은 개인은 50명 제한으로 선착순 현장 접수를 받는다.

 

칠궁은 조선시대 역대 왕을 낳은 왕비가 아닌 후궁 일곱 여인의 신위를 모신 묘당이다. 비록 임금을 낳았지만 왕비의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왕과 함께 종묘로 들어가지 못하고 별도로 세운 이 사당에 모셔야만 했다. 원래는 이곳에는 영조의 생모이자 숙종의 후궁이었던 숙빈 최씨의 사당인 육상궁만 있었다. 그러다가 고종과 순종 때인 1908년에 저경궁(儲慶宮), 대빈궁(大嬪宮), 연우궁(延祐宮), 선희궁(宣禧宮), 경우궁(景祐宮)이 이곳에 옮겨와서 육궁(六宮)이 되었고, 1929년 덕안궁(德安宮)이 이곳으로 오면서 칠궁이 된다.

 

이곳에 모셔진 사당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어머니이자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를 모신 저경궁과 남편인 숙종의 손에 죽은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의 사당인 대빈궁,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 효장 세자의 어머니 정빈 이씨를 모신 연호궁, 사도 세자를 낳은 영빈 이씨를 모신 선희궁, 정조의 아들 순조를 낳은 수빈 박씨의 사당인 경우궁,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를 모신 덕안궁으로 모두 일곱 개의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칠궁이라고 불린다. 덕안궁은 가장 뒤늦게 합류했지만 칠궁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칠궁의 사당은 일곱 채가 아니라 모두 다섯 채뿐이다. 왜냐하면 육상궁과 연호궁, 선희궁과 경우궁이 각각 하나의 사당에 함께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사당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희빈 장씨를 모신 대빈궁이다. 희빈 장 씨는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 민 씨가 폐비가 된 뒤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가 5년 만에 다시 희빈으로 폐위되었다. 인현왕후가 죽은 뒤, 희빈 장씨는 신당을 만들어 인현왕후를 저주해 죽게 했다는 의심을 받아 사약을 받고 숨을 거두었다. 희빈 장씨의 대빈궁은 다른 사당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다른 사당의 기둥들은 모두 사각형인데 비해 대빈궁 기둥은 둥글고 조금 더 화려하며 하단부 기단도 단이 조금 더 높다. 이는 비록 폐위가 되기는 했지만 한때 중전이 되기도 했던 희빈을 배려한 조치라고 한다.

 

칠궁 안에는 사당 외에도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송죽재와 풍월헌 같은 재실과 전사청, 향대청 등이 있으며 사당에 모셔져 있는 신위를 옮겨야 할 때 잠시 모셔 두는 이안청은 사당마다 하나씩 딸려있다. 사당이 있는 담장 너머에는 냉천정이 있다. 냉천정 뒤에는 냉천이라는 이름의 우물이 있는데 이 곳 장대석에는 영조가 어머니의 신위가 모셔진 육상궁을 들렀을 때 냉천정의 아름다움을 표현 하고자 지은 영조의 친필 오언시(五言詩)가 새겨져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 냉천의 우물물은 제사를 지낼 때 쓰였으며 이 냉천에서 흐르는 물은 냉천정 앞 사각형 모양의 연못으로 흘러 들어간다. 냉천정은 영조가 어머니의 제사를 준비하고 휴식을 취한 장소 이다. 냉천정 우측에는 넓은 창이 나 있는데 이 창을 열면 육상궁이 바로 보인다. 효심이 지극했던 영조는 어머니가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냉천정 안에 자신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걸어두기도 했다.

 

조선 왕조에서 무수리의 자식이 왕이 된 것은 영조가 처음이다. 영조는 1724년 왕위에 오른 다음, 마음 놓고 어머니라고 불러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숙빈 최씨)를 기리기 위해 그 다음 해 궁궐 가까운 곳에 사당을 짓고 육상묘(毓祥墓)’라 칭했다. 이렇게 애끓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그리던 영조는 52년의 재위기간 동안 200여 차례나 육상묘(훗날 육상궁으로 승격시킴)를 찾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금단의 문화유산 이었던 사적149칠궁은 왕의 어머니이자 왕의 후궁이었던 한 많은 일곱 여인들의 신주를 모신곳이다. 칠궁의 주소는 서울 종로구 궁정동 1-1이다. 궁정동(宮井洞)자도 바로 칠궁에서 유래하였다. 이 곳 칠궁에는 일곱 왕의 사모곡과 일곱 후궁의 애끓는 한이 300여년을 이어 오고 있다. 살아서는 자신의 아들인 왕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던 후궁인 어머니의 사당 앞에는 아들인 왕도 어머니의 신주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고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했다는 하마석(下馬石)이 그 시절 그 이야기를 오롯이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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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5/06 [09:17]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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