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아름다운 이별] 나는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영화 <무간도>
 
이정석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0/06/05 [19:00]


삼합회의 젊은 조직원 유건명은 보스 한침의 명령을 받고 경찰학교에 입학한다. 비슷한 시기 경찰학교 우등생 진영인은 경찰 황지성 국장의 지령을 받고 가짜로 퇴학된 뒤 삼합회에 스파이로 잠입한다. 10년 뒤, 두 사람은 각각 경찰과 삼합회 내에서 인정받으며 숨겨진 스파이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던 중 한 사건을 계기로 각 조직은 조직 내에 첩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스파이의 정체를 찾아나선다. 그 과정에서 진영인이 경찰임을 증명해줄 유일한 사람인 황 국장이 사망하면서 진영인은 곤경에 처하고, 유건명은 조직 내에서 황 국장이 죽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는다. 황 국장의 전화를 매개로 우연히 연결된 두 사람은 마침내 손을 잡고 조직을 일망타진한다. 하지만 진영인은 경찰서로 돌아온 후 유건명이 스파이임을 알게 되고 그를 체포하려 하지만, 경찰 내 또 다른 스파이인 임국평의 총에 사망한다. 그리고 유건명은 임국평을 사살하고 자신의 정체를 계속해서 숨기게 된다. 진영인의 사망 사건으로 조사를 받게 된 유건명은 한직으로 물러나게 되고, 아내 메리와도 갈등을 겪는다. 이때 최근 고속 승진한 보안부 반장 양금영을 주목하게 되고, 그가 경찰에 잠입한 조직의 또 다른 스파이일 것이라 의심한다.

 

2003~2004(국내 기준) 3편의 시리즈물로 개봉하며 홍콩 느와르의 부활을 알렸던 무간도시리즈의 줄거리다. 오우삼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전후의 홍콩 느와르 황금기가 홍콩 반환 전 자유롭고 부유한 홍콩의 분위기 속에 낭만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다면, 무간도는 잔혹함과 허무함으로 홍콩 반환 이후의 혼란한 정서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불교에서 말하는 18 지옥 중 하나인 무간지옥에서 따왔다. 이곳은 영원히 죽지 않고 고통이 지속되는 가장 괴로운 지옥이다. 무간도는 그 무간지옥으로 이르는 길을 의미하며, 영화 포스터의 제목 글자(타이틀 폰트) 또한 미로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시리즈를 구성하는 세 편의 작품은 진영인과 유건명이 각 조직에서 스파이로서 정점에 달한 시점에 정체가 밝혀질 위기를 겪으며 끝내 관계자들과 진영인의 사망으로 연결되는 1, 두 사람이 스파이로서의 길을 시작하게 되는 시점을 다룬 2(혼돈의 시대), 진영인 사망 6개월 전과 10개월 후의 이야기를 그리며 1, 2편의 빈틈을 메꾸는 3(종극무간)이다. 그 중에서도 1편과 3편은 전체 시리즈의 현재 시점에서 핵심 사건의 전 후를 다루며, 특히 각 편이 경찰 측 스파이 진영인과 삼합회 측 스파이 유건명의 시선을 중점적으로 다루며 연결된다.

 


정체성의 혼란, 그들이 겪어야 했던 진짜 지옥

 

1997년 개봉한 도니 브레스코를 비롯해 국내 영화계에서도 평단과 관객에 신드롬에 가까운 호평을 받았던 신세계’,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까지 범죄조직에 잠입한 언더커버 이야기는 매우 매력적인 소재다. 복수하고 배신하는 것을 넘어 정체를 숨긴 채 진행되는 적과의 미묘한 갈등과 교감, 더 나아가 자기 부정과 전복까지 느와르의 감정적, 심리적 요소를 더욱 풍부하게 확장하기 때문이다.

 

무간도는 이러한 심리적 요소를 양 조직의 스파이라는 이중적 구조를 통해 더욱 극대화시킨다. 이런 이중 구조는 조직과 자신을 심리적으로 분리시키는 역할까지 한다. 다른 언더커버 영화들이 적에게 심리적으로 동화되거나 우정을 쌓고 이것이 갈등으로 연결된다면, 무간도는 두 명의 주인공이 각각의 위치에서 홀로 겪는 심리적 고난에 초점을 둔다.

 

1편의 진영인은 불안한 심리 속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 시간에만 숙면을 취한다. 그리고 경찰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는 자신의 정체를 그녀에게 털어 놓는다. 그곳은 경찰로도, 조직원으로도 분명하지 않고 영원히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순환의 번뇌 속에서 진영인이 일시적으로 탈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리고 마침내 유건명과 손잡고 조직을 무너뜨린 후에도 결국 경찰로서의 삶을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스파이로 시작했지만, 경찰학교부터 경찰로서 계속 살아온 유건명은 삼합회 조직원이라는 자신의 근본적 정체성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유건명의 범죄인으로서의 삶은 초창기의 지극히 짧은 시간에 불과하며, 사실상 이후로 긴 시간을 훌륭한 경찰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근본적 정체성으로 인해 진짜 경찰,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며 그런 삶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3편은 진영인의 죽음 이후 그런 그의 광적인 심리를 보여준다. 1편에서 진영인에게 체포되는 순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얻고 싶다고 고백하던 유건명은 3편에서는 진영인의 죽음 후 자신이 진영인이라는 망상에 빠진다. 그리고 양금영이 조직의 또 다른 스파이일 것이라 의심하며 그의 사무실 앞에 CCTV를 달고, 잠도 자지 않으며 그를 감시한다. 한직에서 복귀한 후에도 팀에 동화되지 못하고 혼자 양금영을 감시하고 뒤를 좇는 유건명. 하지만 관객들은 진영인의 죽음 6개월 전을 다루는 이야기의 과거 축을 보며 양금영은 또 다른 작전으로 진영인과 연결되어 있는 사이임을 알아간다.

 

영화는 유건명의 행동이 관객에게 반전을 위한 트릭으로 작용할 여지를 너무 빨리 거둬들인다. 오히려 이를 통해 유건명의 이상적 행동을 더욱 안타깝게 보며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범죄 스릴러적, 반전적 장치보다는 무간지옥을 뜻하는 영화의 제목에 충실하게 주인공들이 당면하는 심리적 고통에 집중한 것이다. 유건명은 자신의 정체가 모두에게 드러나는 순간에도 일전에 진영인에게 외쳤던 것처럼 나도 경찰이고 싶었는데 왜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소리친다. 그러나 다른 경찰들이 유건명의 어깨를 쏘는 것과 달리, 유건명은 양금영의 머리를 향해 총을 쏘며 결국 죽는 순간까지도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무간도 시리즈 중 가장 수작은 1편으로 꼽힌다. 많은 관객들이 진영인을 무간도의 주인공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의 메시지와 무간의 진짜 고통은 3편까지 이어지는 유건명의 이야기를 통해 완성된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0/06/05 [19:00]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