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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 죄의식은 어떻게 그들의 삶을 지배했나
영화 <7년의 밤>
 
이정석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0/07/29 [08:45]

 

세령마을의 댐 관리팀장으로 부임을 앞둔 현수. 그는 전 부임지에서의 송별 회식을 마치고 가족이 지낼 사택을 보기 위해 차를 몰고 있었다. 안개가 짙게 깔린 세령마을 입구에서 길을 잃은 그는 갑자기 도로로 뛰어나온 여자 아이를 치고 만다. 갑작스런 사고에 놀란 데다 음주운전 상태였던 그는 아직 숨이 붙어 있던 아이를 죽이고 호수에 유기하고 만다.

 

죽은 여자 아이는 마을의 대지주이자 치과 의사인 오영제의 딸 세령이다. 사실 세령은 아버지 영제의 학대를 받던 중 탈출해 도망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세령의 실종으로 마을은 발칵 뒤집혀 수색 작업이 시작되고, 영제는 싸늘한 죽음으로 호수에서 건져진 세령을 마주하게 된다. 광기 어린 분노에 사로잡힌 영제는 반드시 세령을 죽인 범인을 찾아 똑같이 갚아주겠다고 다짐한다.

 

장동건, 류승룡 주연의 영화 ‘7년의 밤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2010년을 전후로 가장 주목 받는 작가 중 한 명인 정유정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2018년 개봉했다. 이 영화는 사실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50여만명의 관객수로 흥행에도 실패했지만, 원작 소설의 많은 장점이 사라졌다는 비평 속에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내재된 죄의식이 두 주인공에게 미치는 각기 다른 영향을 집중해 그려냄으로써 삶과 죄의식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 영화의 중심 서사는 현수가 영제의 딸, 세령을 죽이는 사건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현수와 영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광기에 사로 잡힌 삶을 살게 된다. 먼저 현수의 상황을 살펴보자. 현수는 세령을 죽인 후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집 밖을 헤맨다. 평소에도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무언가 어색하다. 그의 이런 행동은 단순히 세령을 죽인 것에 대한 충격의 영향만은 아니다. 오히려 세령을 죽인 사건은 그의 잠재된 죄의식을 깨우는 계기에 불과하다.

 

사실 그는 이미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월남전 상이용사였던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에 취해 어머니를 구타하기 일쑤였고, 현수는 그런 아버지를 죽이고픈 마음에 우물에 아버지의 군화를 던져 넣는다. 신발을 우물에 버리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미신 때문이다. 그런데 신발을 우물에 버리는 순간 우물 안에서 아버지의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시의 현수는 그것을 환청 정도로 여겼지만, 실제로 아버지가 그 안에 있었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들은 목소리는 환청이 아니라 실제 아버지가 죽어가던 목소리였던 것이다. 직접적으로 살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내재된 의도와 실제 상황이 맞물리면서 현수는 그 뒤로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슴에 품게 된다.

 

세령의 죽음은 그런 과거에 그가 품었던 죄의식을 되살린다. 세령에 대한 죄의식과 더불어 살인자로서 자신의 존재와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오히려 직접적인 살인의 대상은 세령이지만, 그는 세령을 죽인 사건으로 인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트라우마, 죄의식을 마주하게 된다.

 

 

죄의식은 상황이 아닌, 그들의 입장에서 왜곡된다

 

일반적인 살인범과 피해자의 관계에서 죄의식은 당연히 살인범의 몫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세령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의 핵심은 현수가 아닌 영제를 통해 나타난다. 영제는 소유욕이 강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통제 범위 안에 두고 싶어 한다.

 

그의 아내는 그런 영제에 공포를 느끼며 이혼을 요구하고, 딸인 세령은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에 고통 받는다. 세령은 사고를 당하던 그날도 언젠가 학대를 받다 탈출한 자신을 도와준 댐 관리직원 승환을 찾았다. 그러나 이전에 세령을 도왔다가 영제에게 성추행범으로 몰린 적이 있던 승환은 그런 세령을 모른 척 한다. 세령이 사고를 겪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아버지의 폭력, 그리고 이전 어느 날의 행동에 대한 업보였던 셈이다. 승환은 사건의 뒤를 캐는 영제에게 이 사실을 강조하지만, 영제는 진실을 외면한 채 현수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만을 추구한다.

 

영제는 현수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기기 위해 호수 한 가운데 현수의 아들 서원을 묶어둔다. 댐의 수문을 닫으면 순식간에 수위가 높아지는 호수에서 점차 서원은 물에 잠겨가고, 현수는 아들 서원을 살리기 위해 수문을 열고 만다. 그리고 이 사고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현수는 희대의 살인마로 낙인찍혀 사형을 선고받는다.

 

현수가 감옥에 갇히고 사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영제의 복수는 멈추지 않는다. 서원이 살고 있는 아파트, 서원이 옮겨 다니는 학교마다 살인마 최현수를 조명한 잡지를 퍼뜨리고, 결국 서원은 학교마저 그만 두게 된다. 이런 영제의 복수는 처음에 의도했던 살해를 통한 복수를 넘어 현수의 아들에 대한 학대적 개념으로 연결된다. 이는 실제 드러내지 않지만 딸 세령에 대한 죄의식의 발현으로 여겨진다. 그의 복수는 자신의 잘못을 애써 외면하며 내재된 죄의식을 떠넘길 대상을 찾고 옮기는 과정에 가까운 것이다.

 

 

이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아쉬움을 남겼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작 사건의 축인 세령의 죽음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게 느껴진다. 세령의 살인범인 현수는 살인의 죄의식을 남긴 아버지의 죽음부터 세령에 대한 직접적인 살인, 이후 수십명을 몰살시키는 사회적 살인까지 살인이라는 행위의 증폭을 거치는 동안 본인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죄의식에만 매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영제는 복수로 죄의식을 희석시키며 세령의 죽음의 본질을 외면한다. 어찌 보면 둘 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사건을 대하고 죄의식을 왜곡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굳이 미덕이라고까지 하긴 어렵지만 죄의식이라는 화두를 다루는 이 작품만의 독특한 시각은 주목할 만해 보인다. 우리는 어쩌면 수많은 죄의식을 당당하게 마주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저지른 죄와 내면에 자리 잡은 죄의식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제처럼, 혹은 현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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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29 [08:45]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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