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아름다운 이별/ 지워진 사람들, 그들의 왕이 돼라
드라마 <라스트>
 
이정석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1/06/02 [09:53]


작전 전문 설계사인 어둠의 펀드매니저 장태호. 치밀한 계획 아래 진행했던 주식 작전이 실패하면서 전주인 사채업자 정만출에게 죽음을 당할 위기에 놓인다. 구사일생으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던 차에서 탈출한 그는 결국 서울역 노숙자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가진 것 하나 없이 굶주림에 지쳐가던 중 노숙자 무료 급식소에서 위압적인 태도로 새치기를 하는 뱀눈과 시비가 붙어 뱀눈 일당에 두들겨 맞고 밥도 못 얻어먹고 만다. 하지만 이후 서울역 지하도에서 바닥에 떨어진 오천 원짜리 지폐를 두고 다시 마주한 뱀눈을 주먹 한 방에 해치우면서 서울역 지하세계의 권력 구조로 발을 들인다. 알고 보니 뱀눈은 서울역 노숙자 조직의 서열 7위였고, 서울역 지하세계는 노숙자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을 통해 돌아가는 백억원 규모의 조직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 인생의 바닥에서 이제 아무 거리낄 것 없는 장태호는 이 세계의 서열 1위 곽흥삼을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2015년 방송한 JTBC 드라마 라스트의 줄거리다. 이 드라마는 추적자: 더 체이서’, ‘황금의 제국등 선 굵은 드라마를 연출한 조남국 PD가 연출을 맡은 느와르물로, 주인공 장태호 역에 윤계상, 그의 원수 곽흥삼 역의 이범수 등이 출연했다. 이 작품은 JTBC, TVN이 현재의 공중파를 넘어선 드라마 왕국으로 자리를 잡기 전 초창기 작품들 중 하나다. 당시에도 JTBC 드라마는 완성도나 시청률, 화제성 등에서 현재의 위상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공중파에서 보기 어려운 신선함은 강점으로 주목 받아왔으며, 이 드라마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노숙자들로 이뤄지고, 그들의 권력구조에서 이권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조직을 이룬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창조하며 일반적인 스토리라인에도 특별한 참신성을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2011년 다음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웹툰을 그린 강형규 작가는 특히 독특한 설정과 세계관이 매력적인 작가다. 초기작인 무채색 가족은 왕년에 잘 나가던 소설가 조강병 일가의 비참한 상황을 어린 딸의 시점에서 밝게 그려낸 블랙코미디로, 각종 언밸런스한 상황의 충돌과 인간관계에서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로렌스를 구해줘라는 작품은 국내 최고의 재벌이 고결동이라는 일반인들과 고립된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설정속에 최정상의 인기스타 로렌스를 이용한 음모를 다룬 판타지물이다. 현재 연재 중인 ‘CELL’은 우연히 약물을 통해 초능력을 갖게 된 고등학생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며, 흔해 보이는 소재임에도 현실적이면서도 독특한 상황들을 설정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로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라스트는 참신한 설정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액션 느와르의 공식을 자연스럽게 계승하며 40여 회 연재의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에도 여느 느와르와는 다른 자신만의 매력을 구축한다. 분명 현실에는 없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왠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정교하게 구조화된 세계관은 비현실성에서 재미 요소를 발견하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가상의 세계관 속에서도 리얼한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16부작의 장편 스토리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런 원작의 매력에 극 중 캐릭터들을 정교화하고 스토리를 부가하며 풍성한 볼거리와 차별화를 이룬다.

 

 

풍부해진 캐릭터로 원작과 차별화를 이루다

 

서울역 노숙자라고 하면, 대부분 인생의 낙오자를 생각한다. 실제 그들의 삶 역시 대부분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이들이 행방불명으로 주민등록은 말소되어 있고, 사회로 돌아갈 기대는 포기해 버린 지 오래다. 사실상 그들은 세상에서 지워져버린 존재, 살아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죽은 존재에 가깝다.

 

라스트에서 꾸며진 이들의 권력 세계는 세상에서 버려진 이들을 이용한 지독한 돈벌이로 유지된다. 노숙자들이 앵벌이한 돈을 갈취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들의 명의를 도용한 불법 행위에 심지어 활용 가치가 없어진 불법 장기밀매에까지 동원된다. 그런 잔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고, 또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온전한 정신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장태호는 처음부터 선한 사람이 아니라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다. 게다가 서열 1위 곽흥삼에게 접근하는 과정에서 그가 바로 자신의 마지막 작전의 진짜 설계자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이런 설정들은 장태호가 그 잔혹한 세계에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동력이 되며 이야기에 탄력을 준다.

 

드라마는 여기에 원작에는 다소 부족한 요소들을 더해간다. 바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이다. 스토리에 꼭 필요한 주요 인물들로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원작에 비해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어떤 캐릭터는 드라마에서 두 명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또한, 이미 있던 캐릭터나 새로 생긴 캐릭터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서사를 부여한다. 사실 그 설정들은 진부한 부분이 많다. 대표적으로 서열 2위 종구의 경우 드라마에서 개인의 행복과 정의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로 그려지며, 특히 서 마담과의 사연 있는 로맨스를 통해 극 중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이런 설정들은 클리세에 가까운 흔한 설정이지만, 동시에 이 드라마가 원작 특유의 직선적이고 쿨한 느낌을 넘어 대중적인 감정선을 끌어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중요 사건과 그 사건에 연계된 인물들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넘어, 스쳐 지나가는 듯 하지만 다양한 주변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의 변화들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를 더욱 생동감 있게 한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세상에 지워진 존재들일지 모를 그들 역시 한 명 한 명의 사람임을 생각해보게 된다. 어쩌면 그런 미묘한 감정, 요소들이 이 드라마만의 매력을 더해주는 중요한 장치가 아닐까...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1/06/02 [09:53]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