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상품 할부거래법 포섭, 상조업계 대체로 긍정·여행업계는 극구 반대

한국여행업협회 “코로나19 상황에 규제 강화하면 중소업체 줄도산”

상조업계 “개정 취지 공감하나 유예기간 두고 연착륙 유도해야"

일부 언론, 여행업계 감싸며 상조업계 매도…‘마녀사냥’ 눈살

크루즈 여행상품의 할부거래법 적용을 위한 법 개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기존 여행업계의 포섭 여부가 관심사가 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여행업계의 극심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 여행업계가 반대를 표시하는 과정에서 법 개정의 원인을 상조업계로 지목, 무분별한 비판을 가하는 등 마녀사냥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초 공정위는 할부거래법 개정을 중점 과제로 내세우면서 크루즈 여행상품 등의 할부거래법 적용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행상품을 ‘선불식 할부계약’으로 정의함으로써 기존 상조상품과 동일한 규제를 가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할부거래법 제2조의2(선불식 할부계약의 범위)를 신설, “‘법 제2조의 제2호 나목에서 “가목에 준하는 소비자피해가 발생하는 재화 등으로서 소비자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재화 등”이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재화 등을 말한다는 내용을, 여행을 위한 용역(제공시기가 확정된 경우는 제외한다) 및 이에 부수한 재화 가정의례를 위한 용역(제공시기가 확정된 경우는 제외한다) 및 이에 부수한 재화“라고 새롭게 정의했다.

이 같은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크루즈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는 상조업체뿐만 아니라 선금을 일정부분 받거나 적립식으로 상품을 운용하는 기존 여행업체도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게 된다. 이는 천궁실버라이프와 같이 여행사를 자회사로 따로 운영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병폐를 원천차단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그동안 규제일변도 정책에 피로감을 토로해왔던 상조업계에서는 이번 크루즈 여행상품의 할부거래법 포섭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자본금 상향 이후 산업의 질적 성장이 어느정도 이뤄지면서 자정노력을 통해 이미 대부분의 업체들이 수년 전부터 자발적으로 여행상품에 대한 선수금 예치를 이행하며 소비자 피해의 공백을 메우고자 노력했고, 이를 통해 향후 법 개정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나갔던 이유에서다.

반면, 이러한 상조업계 분위기와 달리 미처 할부거래법 적용을 예상치 못한 여행업계에서는 극심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코로나19로 영업환경이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본금 15억원과 회계감사 의무화 등의 새로운 규제를 받게 되면 대규모 도산 사태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여행업계의 최근 동향과 이미 진행되고 있는 영세 여행사의 폐업 사태를 봤을 때 할부거래법의 이중규제는 물론, 그 부담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여행업계에서는 현재 여론몰이를 앞세워 이번 법 개정의 원인이 오롯이 상조업계의 방만경영에 있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다소 무리한 변명으로 비쳐진다.

여행업계의 경우, 상조업계 이상으로 숱한 민원과 소비자 피해가 존재해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규제로 우후죽순 영세 여행사가 난립하던 상황이다. 사실상 언제 규제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업종이 바로 여행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행업계, 할부거래법 아니더라도 규제 필요하다

지난 6월 7일, 한 여행전문 언론매체에서는 ‘적립식 여행상품도 할부거래법 적용받으면...’이란 보도에서 공정위가 상조업계의 문제를 잡기 위해 여행업까지 규제하려 한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번 할부거래법 개정 논의가 ‘상조업계를 조준한 법 개정’이라며 폐업한 상조회사를 예로 들며 ‘역대급 소비자 피해’라는 표현으로 매도하는 등 상조업계 현실과 지나친 괴리를 나타내는 문제적 발언들이 이어졌다. 이는 마치 여행업계를 대변하기 위해 상조업계의 문제점을 애써 들춰내며 일종의 ‘묻어가기’를 시도하는 처사로 보여진다. 실제로 여행업계와 상조업계를 둘러싼 소비자 피해 이슈는 어떨까.

먼저 상조업계의 경우, 2019년 천궁실버라이프 폐업으로 560건, 23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 이런 유형의 소비자 피해가 일어난 것은 업계로서 자성이 필요하겠으나 이를 역대급이라고 표현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소비자 상담 건수를 비교하면, 여행업계는 지난해 1만 4895건을 기록한 반면, 상조업계는 4575건 기록, 3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해당 기사에서 지적하고 있는 2019년의 상조 관련 소비자 상담 건수는 5932건으로 여행 관련 1만 755건 대비 절반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아울러 상조업계의 경우 이러한 소비자 상담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자본금 증자를 통해 영세업체의 구조조정을 통해 질적성장을 이룩하면서 업계 스스로의 자정 노력이 이어진 탓이다.

여행업계의 경우 소비자 피해 상담 건수는 해마다 1만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이런 실질적인 데이터로 봤을 때, 이번 법 개정의 책임이 오롯이 상조업계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우후죽순 난립하고 있는 여행업계에 대한 규제가 이번 할부거래법 개정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현행법상 여행업계는 설립 자본금 요건이 1억원에 불과해 폐업과 신설이 빈번하며, 이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시장혼란으로 오히려 관광업계에서는 규제의 강도를 높여달라 주장하는 형국이다.

다만 소비자 보호를 위해 이번 법 개정 논의 이전부터 대비해 온 상조업계와 달리 여행업법과의 이중규제로 인해 적지 않은 혼란이 예상되는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국내 산업계 전체가 코로나19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감안하면 중소업체들의 애로도 상당할 것이라 예상된다. 이는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 사실상 영업이 마비됐던 상조업계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현재 법 개정의 필요성과 취지에 공감하되, 중소업체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예조치’ 등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조업계 한 관계자는 “상조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특별히 반대하는 분위기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아직까지 선수금 예치를 미리하지 못한 업체도 소수 존재하는 만큼, 기존 선수금 예치나 자본금 증자와 마찬가지로 일정 기간을 둠으로써 연착륙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이어 “다만 할부거래법 개정 이슈가 있을 때마다 일부 언론, 국회 등에서 상조업계를 향해 지나친 마녀사냥을 가하고 있는데, 이제는 이러한 행태는 그만둬야 한다”며 “업계에 피해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긍정적으로 바뀐 것도 많고, 바뀌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하며, 실제로 이는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상조 서비스 소비자 피해 매해 감소 추세

법 개정 이슈를 두고 화살이 상조업계로 향하는 것에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적지 않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편, 근본적으로 상조산업을 둘러싼 부정적인 ‘프레임’ 그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상조업은 그동안 부정적인 이미지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최근 수년간 소비자중심경영 도입, 자본금 증자, 대형사 중심의 구조조정, 피해보상 방식 다변화 등 꾸준한 자정 노력을 거듭해 성과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앞서 언급했던 소비자 피해상담 건수를 비롯한 피해 구제 건수의 감소를 꼽을 수 있다. 이와 관련 지난해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전체 소비자 상담 현황을 살펴보면 총 70만 9714건으로 집계됐다. 이중 상조 서비스 관련 상담 건수는 총 4575건으로 전체의 0.7%에 불과했다. 더욱이 이는 전년 5932건 대비 1357건(22%) 감소한 것으로 그간 상조업계에서 전개해온 자정 노력이 어느정도의 결실을 내는 과정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소비자 상담 건수는 업체의 폐업 시 일시적으로 급증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안정적인 재무개선을 꾀하고 있는 최근 더욱 감소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상담 건수 외에 상조 서비스의 피해구제 역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피해구제 접수 현황을 살펴보면 천궁실버라이프의 폐업 시기를 기준, 지난 2019년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191건으로, 2018년 265건 대비 27.9% 감소했다. 이는 신설 상조업체에 대한 자본금 기준 강화로 인해 신규 업체 진입이 어려워진 한편,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이 강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러한 실질적인 변화를 제대로 바라봐주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적된 불신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더불어 장례업계에서 일어나는 병폐도 마치 상조업체의 책임인양 떠넘겨지기 일쑤다. 후불제 의전업체의 잘못에도 ‘상조’는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 여행사의 잘못도 상조업계의 짐이 될 형편이다. 이러한 억울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또 다시 업계 스스로가 노력해야 할 처지다.

한편, 아직 여행업계가 할부거래법에 포섭될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공정위에서는 각 업계의 의견을 일단 경청하고 신중하게 개정하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