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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기 작가의 사진이 있는 이야기/ 흐르는 물에 머리 감는 날 유두절은 우리 조상들의 바캉스였다
 
한남기 사진작가, 동국대학교 평교원 교수   기사입력  2022/07/18 [21:58]


우리나라 명절 중 오직 유두만이 우리 고유의 풍속이고 그 밖의 것은 모두 중국에서 유래한 날이다. 유두절은 음력 6월 15일로 올해는 7월 13일이다. 유두절 또는 유둣날은 물맞이를 통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기 위해 생긴 세시풍속이다. ‘유두’란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로 이날이 되면 일가친지들이 맑은 시내나 산간폭포에 가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다. 그런 뒤에 준비해간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게 하루를 지낸다. 

 

유두절 풍속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고려 희종 때의 학자 김극기(金克己)의 ‘김거사집’에 “동도(경주)의 풍속에 6월 15일 동류수(東流水)에 머리를 감아 액을 떨쳐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유두날에는 탁족놀이도 즐기는데 이 역시 단순히 발을 씻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는 뜻이 있다. 선조들은 유두절을 잘 보내면 여름 질병을 물리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두절 아침에는 각 가정에서는 유두면, 밀전병, 수단(水團), 건단(乾團) 그리고 피, 조, 벼, 콩 등 여러 가지 곡식을 햇과일과 함께 사당에 차려놓고 고사를 지내는데 이를 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 하며 농가에서는 연중 농사가 잘 되게 하여달라고 농신(農神)에게도 고사를 지낸다. 이 때 사당에 올리는 벼, 콩, 조를 각각 유두벼, 유두콩, 유두조라 한다. 조선시대 세시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6월 월내조(月內條)에는 피, 기장, 벼를 종묘에 천신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밀가루로 만드는 유두면을 먹으면 장수하고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또 액을 쫓는다 하여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처럼 만들고 오색으로 물을 들여 3개씩 포갠 다음 색실로 꿰어 허리에 차거나 대문 위에 걸어 두는 풍습도 있었다. 농촌에서는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참외나 기다란 생선 등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논의 물꼬와 밭 가운데에 차려놓고 농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면서 고사를 지냈다. 

 

고사를 지내고 나면 자기 소유의 논과 밭 하나하나 마다 음식물을 묻음으로써 제를 마치게 된다. 이렇듯 유두는 새로운 과일이 나고 곡식이 여물어갈 무렵에 몸을 깨끗이 하고 조상과 농신에게 정갈한 음식물로 제를 지내며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우리 민족의 오랜 풍속 중의 하나이다. 유두고사는 1960년대까지 성행했으나 1980년대 들면서 거의 잊어져 갔다. 삭막한 요즘 현대 사회에 우리 고유의 유두절 행사가 그리워진다.

 

뚜렷한 사계절과 지혜로운 조상을 둔 덕에 아마 우리나라처럼 다양하고도 섬세한 음식문화를 가진 나라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절기 마다 특정 음식을 즐긴다. 입춘엔 오신채, 정월 대보름엔 오곡밥과 부럼, 삼짇날은 화전과 청포묵, 한식에는 찬밥, 초파일엔 콩 볶음, 단오엔 쑥떡과 매실음료, 삼복엔 삼계탕과 육개장, 유두절엔 콩국수, 칠석엔 부침개, 추석엔 송편, 중양절엔 국화, 상달엔 고사떡 등 우리 민족은 이처럼 절기나 철이 바뀔 때마다 제철에 딱 맞춤한 음식을 지어먹고 이웃과 나누기도 했다. 

 

특히 유두절에 밀국수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믿고 국수를 즐기는 날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유두면은 국수 가락처럼 길게 오래 살라는 뜻의 장수면 이라고도 한다. 날이 갈수록 더워지니 슬슬 여름 보양식 챙겨 먹을 때가 됐는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여름 별미로 무엇이 좋을까? 삼계탕과 초계탕, 장어, 민어, 낙지 등 다양한 여름 별식이 있지만 살얼음 동동 뜬 고소한 콩국수야 말로 유두절 보양식의 대표 주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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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7/18 [21:58]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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