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칼럼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아름다운 이별/ 드라마 ‘더 글로리’
 
이정석 객원기자   기사입력  2023/04/13 [10:14]

 

-운명과 인연의 얼개로 엮인 슬픈 복수극

 

여관의 달방에서 생활하며 힘겹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고생 동은. 가난에 더해 하나뿐인 어머니의 보살핌마저 받지 못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건축가의 꿈을 키워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그의 앞에 커다란 시련이 찾아온다. 연진을 중심으로 재준, 사라, 혜정, 명오 등으로 이뤄진 패거리들의 타깃이 되어 왕따와 학교폭력의 희생양이 된 것. 앞서 괴롭힘의 대상이었던 소희가 전학을 가고, 폐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사망하자 그들은 다음 대상으로 동은을 찍었다. 고데기로 팔을 지지고 성적 학대를 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폭력이 자행되고, 이에 동은은 경찰과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연진, 재준 등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은 집안의 인맥과 담임의 비호아래 어느 곳에서도 통제를 받지 않는다. 담임은 오히력 동은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다그치고, 경찰은 연진 모의 친구가 서장으로 있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결국 참다못한 동은은 자퇴서를 내고 그 사유로 학교폭력을 적어내지만, 담임은 학교를 떠나게 된 동은에게 폭력까지 행사하며 자퇴 사유를 바꾸려 들고, 동은 모는 돈 몇 푼에 ‘부적응’으로 사유를 고친 자퇴신청서에 사인을 한다. 심지어 어머니가 여관 달방마저 짐을 빼버리면서 동은은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안게 되고, 자신을 이런 고통으로 몰아넣은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찜질방에서, 식당에서, 공장에서 잠을 쪼개가며 일하고, 공부하는 동은. 자살을 시도하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결국 마음을 다잡고 서서히 복수를 준비하며 마침내 18년의 시간이 흘러 가해자들 앞에 나타난다.

김은숙 작가가 대본을 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줄거리다. 이 드라마는 그 동안 멜로 위주로 다수의 히트작을 쏟아낸 김은숙 작가가 처음으로 장르물을 맡아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특히 ‘태양의 후예’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송혜교와 다시 한 번 손 잡고 기존 드라마 속 송혜교와는 전혀 다른 ‘문동은’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더욱 기대를 모았다. 결과는 대성공. 2022년 12월 30일에 파트 1이 공개되었고, 2023년 3월 10일에 파트 2가 공개되었으며 파트 1과 파트 2의 공백기 동안 온라인에서는 기다리기 힘들다는 시청자들의 아우성과 파트 2의 내용을 예측하는 이야기들이 넘쳐나며 하나의 신드롬으로 자리잡았다. 공개 직후 한국을 비롯 다수의 아시아권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전세계 순위에서 주간 3위를 차지하는 등 많은 인기를 얻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의 초반부를 충격적이다, 보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초반부는 주인공 동은의 고통을 최대한 몰입도 있게 재현하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해자들이 전혹하고도 집요하게 동은에 공포를 심어줄 때, 동은이 화상을 입고 눈밭을 뒹굴며 울부짖을 때, 죽기 위해 차가운 겨울 강물로 걸어들어갈 때, 교사의 폭력과 어머니의 배신에 휘청일 때 동은이 느끼는 고통과 심리적 충격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집요한 폭력의 장면들은 이후 시청자들이 절대적으로 가해자들을 미워하고, 피해자의 응징을 응원하게 되는 기폭제가 된다. 지금의 시청자들은 눈이 높아졌고, 이유 없는 악인들의 행위와 사연 없는 신파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렇게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마저 예전 TV를 보며 뻔한 신파와 노골적인 선악구도에도 쉽게 빠져들던 시기로 돌려보낸다. 김은숙, 송혜교의 변신은 그만큼 파괴적이고 성공적이었다.

이 드라마의 복수는 호쾌하지 않다. 동은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가해자들이 스스로, 그리고 서로에 의해 몰락하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운명처럼 동은에게 다가와 조력자가 된 이들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이런 설정과 스토리는 자연스럽게 전통적인 인과응보, 권선징악을 떠올리게 한다.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을 하찮게 여기고, 죄를 저질러도 교묘히 처벌을 피해가며 스스로를 마치 신성불가침의 존재처럼 여기는 연진은 유명 기상캐스터이기 때문에 겪게되는 세간의 시선, 그리고 사실은 그가 완성짓지 않은 살인의 최종 범인으로 지목되며 감옥에 갇히는 방식으로 한 번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직접적인 폭력의 중심이던 손명오는 술병에 맞아 죽고, 하느님을 믿으며 마약을 하는 사라는 교인들 앞에서 마약에 취한 모습을 보이고, 혜정을 죽일뻔 하면서 본인은 물론, 집안까지 무너진다. 부잣집 아이들과 어울리며 허영에 가득한 혜정은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재준을 향한 복수에 동참한다. 연진과 내연 관계에 있던 재준은 연진의 딸이 사실은 자신의 자식임을 알게 되면서 각종 사건을 만들어내고 그 끝은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이들 가해자 5인방은 동은이 철저히 준비한 플랜에 따라 자신에 의해, 또는 그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주변인에 의해 죽거나 망가진다. 그리고 그들이 겪게 된 시련은 앞서 그들이 저질렀던 악행과 유사한 형태가 되거나, 그 악행의 결과로서 발생한다.

이 드라마에서 연진 모와 관련해 나오는 무당, 미신에 관한 설정들은 그런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업보와 운명을 이야기하는 전통 무속의 세계는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동은의 인생과 복수의 속성과 닮아있다. 무당이 죽은 소희를 위한 굿을 하다 쓰러지는 장면은 무속인이면서 신을 욕보인 무당에게 가장 합당한 벌인 동시에 업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반대로 동은의 조력자들은 정말 우연히도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오지만 그를 살게하고, 그가 자신의 유일한 인생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들은 상처를 가진 서로에게 끌리고 연대하며 동은의 복수로 상징되는 모두의 목표로 다가간다. 이런 운명과 인연의 힘은 업보와 인과응보의 줄기와 함께 씨줄, 날줄로 엮이며 한 여자, 그리고 그를 둘러싼 슬프고 처연한 복수의 세계를 완성해간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23/04/13 [10:14]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