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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 드라마 ‘멜로가 체질’
 
상조매거진   기사입력  2024/04/27 [00:09]

 

-세상의 수많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

 

▲ 이정석 객원기자     © 상조매거진

똘기 충만한 드라마 작가 진주, 히트작 한 편으로 벼락부자가 된 다큐멘터리 감독 은정, 대학 시절 하룻밤 사고로 아이를 갖고 결혼했지만 한 해만에 남자는 떠나고 홀로 일하며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 한주. 이들 세 명은 대학교 때부터 절친한 동기 사이로 서른이 되어서도 여전한 우정을 자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사람은 은정의 집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는데, 연인의 죽음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은정을 지키기 위해서다. 

 

은정은 연인인 홍대가 시한부로 생을 마감한 후에도 계속 그의 환영을 겪는다. 그것이 현실일 리 없음을 그녀 또한 잘 알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공허함에 전 재산을 아동 복지재단에 기부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빈털터리가 된 그녀는 새 프로젝트로 또 한 명의 대학 동기이자 배우인 소민을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다. 드라마 제작사의 마케팅 PD인 한주는 오늘도 힘겨운 을의 처지에서 고군분투하지만, 신입사원 재훈이 팀에 합류하면서 직장생활에서도, 그녀의 인생에도 새로운 힘을 얻는다.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 혜정의 보조작가로 일하던 진주는 방송국 공모전에 제출한 대본이 독특한 성격이지만 능력은 탁월한 젊은 스타 PD 범수의 눈에 띄면서 정식 데뷔의 기회를 잡게 된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닭강정’이 화제다. 사람이 닭강정이 된다는 황당한 설정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정도의 매운 B급 유머와 감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을 연출한 이는 바로 ‘극한직업’으로 유명한 이병헌 감독. 하지만 닭강정 이전에 이미 그가 연출한 드라마가 하나 있었으니, 2019년 JT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이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멜로 드라마의 형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병헌 감독만의 독창적인 캐릭터와 스토리, 연출로 많은 호평을 얻었다. 시청률은 2%에도 못 미치는 아쉬운 성적을 남겼지만, 많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유튜브나 SNS 등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큰 반응을 얻었다. 

 

이 드라마의 특징은 유쾌함에 기반한다. 이병헌이라는 스타 감독의 당연하고도 명확한 스타일이다. 기존에 보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웃음 포인트는 물론이거니와, 중요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도 과도하게 몰아가지 않는 쿨한 연출, 하지만 순간순간에 등장하는 마치 사랑에 대한 격언집에나 나올법한 무게 있고 깊은 통찰을 주는 대사들이 적절한 합을 이루며 드라마의 주제이자 소재인 ‘사랑’이 갖는 애틋하고 감성적인, 그리고 행복한 정서를 탁월하게 풀어낸다. 버스커버스커의 장범준이 부른 드라마의 주제가는 명랑한 기타 소리가 주는 특유의 청량함으로 드라마의 경쾌한 분위기를 명확히 표현하며,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벚꽃엔딩’에 버금가는 장시간의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사랑한다

 

이 드라마에는 굉장히 많은 사랑이 등장한다. 진주와 범수는 일로 만난 사이지만,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사랑으로 발전한다. 심지어 진주가 대학 때부터 오랫동안 사귄 전 남자친구는 범수 밑에서 일하는 후배 PD이고, 매사 부딪칠 수밖에 없는 PD와 작가의 관계에서 서로 서운한 감정이 쌓이고 싸우기도 하는 여러 어려운 상황에 놓이지만, 합리적으로 방향을 잡아가며 일과 사랑을 함께 만들어간다. 

 

한주는 무책임하게 남편이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떠난 뒤에도 홀로 9년 동안 아이를 키워왔다. 당연히 일과 육아에 매달리느라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할 시간조차 없었지만, 재훈을 만나고 자신의 틀을 조금씩 깨 나가며 결국 다시 연애까지 하게 된다.  

 

은정은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다 못해 여전히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옆에 두려 한다. 두 사람 중 누군가 의도한 이별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갈라진 사이. 그래서인지 은정은 그가 없는 듯 사는 삶에 죄책감을 느끼는 듯하다. 항상 현실에 없는 그와 대화를 나누고, 중요한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묻고, 애정을 표현한다. 하지만 그녀를 걱정한 친구들과 동생의 마음을 알기에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고, 조금씩 전 연인을 지워가며 새로운 사람과의 인연을 시작하게 된다. 

 

이 외에도 오랫동안 매니저와 배우의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용기 내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는 수민 커플, 동성인 연인과 사랑하고 있는 은정의 동생 효봉 커플, 오래된 업무 파트너의 관계를 힘겹게 벗어나 이제 애틋한 감정을 드러낸 혜정 작가와 성 국장 커플, 가진 것 없는 공시생이지만 순수한 사랑을 만들어가는 진주의 동생 지영 커플까지 이 드라마에는 굉장히 많은 사랑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누군가에게는 작게 느껴질지 모르는, 경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지 모르는 크고 작은 걸림돌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은정은 서로의 문제가 아닌,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이별을 맞이하고 자신의 삶까지 그 이별에 잠식되어 버렸다. 은정의 에피소드는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결국은 새로운 인연에 닿는 지점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세상 모든 사랑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걸림돌이 있음을, 사랑은 때로는 후유증을 남기지만 끝내는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해야 하는 것임을 이 드라마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을 통해 보어주며, 은정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이러한 주제의식을 확연히 보여준다. 

 

사랑은 ‘그래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의 본질임을,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삶의 행복임을 드라마를 보며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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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4/27 [00:09]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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