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진입 부담·금산분리 완화 연기 등에 ‘미지근’
지난해 불거졌던 생보사의 상조산업 진출 논의가 잦아들고 있다. 이들 보험사는 당초 요양사업과 함께 미래 먹거리로써 상조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나 정부가 추진하고 있던 금산분리 완화 추진 시기가 올 하반기까지 연기된 바 있고, 상조산업의 대다수가 중소기업인 만큼, 진출에 대한 대외적 여론도 좋지 않았던 상황이다. 이에 보험업계에서는 2024년 대부분 사업보고서에서 상조업 진출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고, 구설이 적은 ‘시니어 케어’로 다시금 눈을 돌리는 모양새다.
최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올해 보험사 상조업 진출 검토 관련 논의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무기한 연기 됐던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추진이 올들어 다시 재시동됐지만 보험업계의 자회사 진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이고, ‘금투세’, 금융위원장 교체 등 굵직한 이슈에 뭍혀 지지부진한 상태다. 때문에 이미 대다수 보험사의 마음은 상조업 진출을 접은 모양새다.
우선 보험업계가 상조업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비금융업종 진출이 가능한 금산분리 완화 등의 작업을 통한 법안 개정은 필수다. 이와 관련 현재 보험업법 시행령이 규정하는 보험사 자회사 업무 범위는 상조회사 진출을 허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연기됐던 금산분리 완화 논의가 재추진되면서 보험업법이 개정될 개연성이 생기긴 했지만 문제는 보험사의 진출 열의가 미지근해졌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만하더라도 특히 생보업계에서는 생명보험협회를 중심으로 상조업 진출을 적극적으로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각계에 피력해왔다. 이와 관련한 자회사 진출을 허용해달라는 건의도 잇따랐다. 이런 보험업계의 움직임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 10여 년 전부터 상조업체와 장례제휴 보험상품을 판매해오고 있고, 현재까지도 이러한 업무 제휴는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11년에는 금융위원회에 직접 상조업 자회사 진출을 허용해달라고 건의하는 등 오랜 시간 문을 두드려왔다.
상조업, 외형성장 지속하고 있지만 중소기업 ‘대다수’
‘캐시카우’ 업종 환상 버린 보험업계, 요양사업으로 눈 돌려
이러한 생명보험협회가 올해부터는 사업전략에서 상조업을 제외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생보협회 내부 신사업 담당 부서에서도 전과 다른 분위기가 엿보인다. 상조업은 주요 논의 사항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고, 대부분 시니어 케어로 역량을 집중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보헙업계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금산분리 완화 움직임이 지지부진한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으나, 결정적으론 보험업계 자체 검토 결과 상조업이 크게 ‘메리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해서다.
우선 대외적으로 알려진 상조산업의 규모는 10조원에 육박한다. 해마다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상조’에 대한 인지도를 생각하면 상조업 진출을 타진한 당시 보험업계로서는 마치 ‘금맥’을 발견한 듯 한 인상을 주기 충분하다. 각종 언론매체에서도 해마다 조 단위 시장 규모를 피력하며 상조산업은 블루오션 ‘캐시카우’ 산업으로 소개되며 구미를 당긴다.
그러나 상조업은 엄밀히 ‘캐시카우’ 업종은 아니다. 현금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절반을 할부거래법 규제에 따라 별도예치하고 있으며, 수익의 발생 시점 역시 상조상품의 특성상 예측하기 쉽지 않아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 만큼 현금유동성이 아주 풍부한 산업은 결코 아니다.
물론, 보험사의 자산운용 노하우를 더한다면 경영상의 이점이 존재할 것으로 보이지만 보험업과 판이하게 다른 서비스의 영역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높아 섣부른 시장 진출은 들이는 비용 대비 큰 모험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상조시장 외부에서 상조업 진출을 타진하는 경우, 십중팔구는 상조업체의 현금 유동성만을 노리고 진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경우 대부분은 몇 해 버티지 못하고 시장에서 존재감을 감추고 있다. 일례로 몇몇 대주주가 바뀐 상조업체의 경우 서비스의 노하우를 장악하지 못해 외주 중심의 영업으로 기존 평판이 훼손되는 경우가 존재하고, 극단적으론 선수금을 유용하는 등의 부정 행위를 일으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상조산업은 외형적으로 해마다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시장 개편이 진행 중이다. 조 단위 선수금을 적립한 대형업체 중심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에 있고, 2024년 8월 31일 기준 전체 78개 선불식 할부거래업체 중 상위 몇 개사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중소기업으로 구성돼있다는 점도 부담 요소로 꼽힌다.
생명보험업계가 상조업 진출을 타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상조산업협회를 비롯한 업계의 반대가 극심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가뜩이나 현재까지도 국정감사 등 곳곳에선 카카오 등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이슈화 되는 상황이고, 올초에는 기획재정부가 직접 상조업을 차세대 육성산업으로 선정해 진흥법안 제정에 착수하는 등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보험업계의 상조업 진출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
이 밖에도 상조업은 해마다 사실상 새로운 규제가 더해지고 있다는 것도 리스크로 꼽힌다. 상조업법 제정은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 사이 크루즈 여행상품의 선수금 보전조치 의무화, ‘내상조 알림제도’ 시행을 통한 소비자 문자 발송 등 영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고려해야 할 법적 가이드라인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앞으로도 공제조합사를 중심으로 한 담보비율 상향, 자산운용에 대한 규제 검토 등 계속적인 험로가 기다리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보험업계에 따르면 앞으로 사업계획에, 상조산업 진출이 포함된 곳이 실제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 상조업 대신 요양사업 선택···긍정 전망 이어져
정부, 요양시설 확충 정책 추진···변수는 요양업계의 반발
상조업 진출과 관련해선 정부에서도, 보험업계에서도 미지근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지만 요양 사업에서는 정부 역시 규제를 완화할 전망이다. 이에 각종 언론매체 등에 따르면 보험업계에서도 상조업 대신 유망한 먹거리로 요양 사업을 선택하는 분위기다.
이미 KB라이프생명, 신한라이프케어 등 유수 보험사들이 관련 노하우를 구축하고 있고, 정부에서도 요양시설 확충 등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요양 사업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시기적으로 적기라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 지난 7월 정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다양한 유형의 노인주거시설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 운영 규제부터 부지, 자금 등 공급단계의 전반에 걸친 규제를 완화하고, 수요자 맞춤형 지원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보험개혁회의 역시 최근 보험회사의 장기요양 서비스 부수업무 허용을 안건으로 삼았다. 기존은 요양 서비스 특성상 보험회사의 부수업무 해당 여부가 명확치 않아 신규 진입 저조하다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다만, 변수는 기존 요양업계의 반발이다. 일례로 최근 정부는 요양시설 공급 규제 완화를 내세워 추진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노인복지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에서 임차 등 토지와 건물 사용권만으로도 노인복지주택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는 즉, 소유하지 않아도 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으로 향후 보험사, 사모펀드 등 다양한 업종에서의 투자가 예상되는데, 이를 두고 기존 업계와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것이다.
지난 9월 25일 보험연구원·생명보험협회가 주관한 ‘고령자 요양, 주거시설 현황과 보험회사의 역할’ 세미나에서 박종림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부위원장은 보험사가 토지와 건물을 모두 매수한 KB라이프의 위례 빌리지를 예로 들며 “보험사가 설치 기준을 준수해서 진입하면 반대하지 않는다”며 “임차허용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후 요양시설 진입 규제를 풀어달라는 건 초기 투자 비용과 경영 리스크를 손쉽게 해결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진입 규제 완화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며 “시설이 부족한 일부 지역에는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서비스 질 개선을 위해 원활한 인력 수급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보험사에는 “인적, 경제적 인프라를 이용해 일본의 솜 홀딩스처럼 서비스 제공을 위한 교육 개발과 AI 스마트 서비스 도구 개발 등 연구 활동으로 요양 서비스 활성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급격한 인구 고령화로 단기간에 고령자 주거 시설을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유 규제 완화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받아치면서 대립이 격화돼, 지난해 상조업과 더불어 요양사업 진출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