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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지독한 운명이 낳은 비련의 복수극
 
이정석 객원기자   기사입력  2013/11/05 [15:38]
화이에게는 다섯 명의 아버지가 있다. 다섯 아버지는 이른바 ‘낮도깨비’로 불리는 이들로, 신출귀몰한 범죄행각으로 얼굴 등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은 범죄 집단이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 석태를 중심으로, 모든 범죄 계획을 설계하는 전략가 진성, 말더듬이 운전 전문가 기태, 칼 쓰는 게 전문인 행동파 동범, 총기 전문가 범수까지 이들은 각자의 특기를 살려 최상의 팀워크를 이룬다. 이들 다섯 아버지는 어린 화이를 유괴한 이후 직접 그를 키우며 자신들의 특기를 가르쳤고, 어느덧 고등학생의 나이로 자란 화이는 아버지들 못지않은 범죄 능력을 갖게 된다.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야 하는 화이는 어느 날 재개발 지역에서 혼자 나가지 않고 있는 한 부부를 살해하는 계획에 투입되고, 석태의 강요로 직접 부부 중 남편을 총으로 쏴 죽이게 된다. 그러나 그가 죽인 남자는 다름 아닌 자신의 친아버지로, 끝까지 이사를 가지 않았던 것도 잃어버린 자신을 기다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데…….

2003년 범상치 않은 분위기와 기발한 발상으로 주목 받았던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감독이 신작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로 돌아왔다. 요즘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는 청소년 배우 여진구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스크린을 주름잡는 배우 김윤석 등 화려한 출연진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여기에 화려한 액션과 꽃미남 배우의 복수, 다섯 아버지라는 특이한 설정까지 더해지며 확실한 흥행성을 갖춘 대중영화로 기대를 모았다. 19세 이상의 관람 등급에도 불구하고 개봉 2주만에 200만 관객을 넘기며 실제로도 기대만큼의 흥행 실적을 올리고 있다. 


소년, 가혹한 운명을 향한 복수를 시작하다

이 이야기는 복수를 다룬 영화다. 친아버지가 죽은 후 화이는 자신을 키워준 다섯 아버지, 친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을 대상으로 복수를 하며, 그 와중에 살아남은 친어머니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간다. 언뜻 보면 가족을 위험에 빠트리거나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복수극과 비슷한 구도다. 그러나 사실 화이에게는 친부모와의 기억도 없고, 그들에 대한 애틋함도 없다. 그에게도 자신의 출생과 친부모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혹은 그리움 등이 있었겠지만, 영화에서 그런 부분은 특별히 나타나지 않는다. 친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알게 된 후에야 비로소 친어머니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타날 뿐이다. 이는 이 복수가 지극히 화이 자신을 위한 복수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낳은 복수극이 아닌, 의도치 않게 친아버지를 죽여야 했던 가혹한 운명으로 자신을 몰고 간 이들을 향한 분노의 복수극인 것이다.

그래서 화이는 아버지들에게 복수를 하며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묻는다. 왜 자신의 친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왜 그런 운명을 부여했는지를 묻는 그의 말에 이 복수의 핵심이 숨어있다. 일반적으로 피를 피로 갚는 복수극은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일으키거나 반복되는 복수로 인한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춘기 소년이 겪는 혼란,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대한 분노가 뒤섞이면서 기존 복수극과는 다른 새로운 매력을 갖게 된다. 

괴물이 되어 괴물에 맞서다

이 영화는 화이에게 아버지들의 모든 범죄 기술을 가르치고, 끝내 범죄자로 이끌고자 하는 석태와 자신에게 얽힌 모든 비밀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들에게 복수를 시작하는 화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다섯 아버지와 여느 집 부자지간과 다르지 않게 살갑게 지냈던 화이지만 왠지 석태에게는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혹독하게 키워왔고, 늘 무서운 모습의 석태였기에 어쩌면 화이에게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화이는 어릴 적부터 괴물이 나타나는 환상으로 괴로워해왔는데, 처음 석태가 총을 쥐어주며 사람을 쏘라고 했을 때도 괴물의 환각을 마주하게 된다. 석태는 화이가 어렸을 때부터 괴물이 보인다고 할 때마다 그를 안아주기 보다는 괴물을 노려보며 마주하라고 말한다.

영화는 막바지에서 왜 석태가 화이를 유괴했는지, 그리고 왜 괴물이 보인다고 하는 화이를 가혹하게 다뤘는지 설명한다. 화이가 보았던 환상 속의 괴물을 이미 석태 역시 경험했던 것이다. 청소년기 홀로 괴물의 환상에서 괴로워하던 석태는 스스로를 극한의 악당으로 몰아붙인 후에야 괴물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모든 상황을 이끌고 만들어가는 석태는 모든 범죄의 중심이며, 철저하게 잔혹한 악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어쩌면 그의 이러한 행위들은 괴물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괴물의 정체는 일종의 죄책감으로 보인다. 절대선으로 그려지는 화이의 친아버지를 보며 열등감을 갖고 있던 석태는 그가 가진 소중한 것들을 깨버림으로써 적어도 괴물의 환상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화이의 친아버지는 절대악인 석태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다. 석태로서는 화이의 친아버지를 보며 자신의 악마성이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확인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행위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석태가 자신을 절대악으로 만들면서 괴물에게서 벗어난 것은 자신을 악 그 자체로 받아들임으로써 죄책감을 없애버렸기 때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석태가 화이를 가혹하게 다루고 범죄에 끌어들였던 것도 화이를 자신과 같은 환상에서 구해줄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그것이 곧 그만의 화이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석태는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남자의 아이를 유괴해 범죄 기술을 가르치며 자신의 운명을 이식했다. 어떤 면에서 화이는 그의 분신이기도 하며, 다른 면에서는 열등감의 발현이기도 하다. 마치 거울과도 같은 석태와 화이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 처절한 복수로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저주하는 화이의 복수극은 그 동안의 평범한 복수극과는 다른 묘하고 기괴한 매력의 새로운 복수극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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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05 [15:38]  최종편집: ⓒ sangjo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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