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포커스 ‘신종 금융상품의 고객자금 보호방안’ 보고서 발표
-예치선수금, 고객 예금으로 간주해 ‘공사가 보호’
미예치금에 대해선 업체가 보험료 지불하는 ‘하이브리드 보호제도’ 제언
-상조업체 보험료 부담···자산운용·상품개발·물가인상 보전 등 차질
VS KDI 측 "선수금 100% 예치하는 것보단 부담 덜해"
업계, 상조업계 선수금은 해마다 9조 아닌 '누적치', 육성 정책 나와야
상조 선수금을 사실상 금융상품으로 해석하고, 적절한 보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이와 관련,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은 상조 선수금을 비롯한 가상자산 예치금, 선불충전금 등을 신종 금융상품으로 판단하고, 예금보험공사 보호와 같은 공적기구가 소비자 피해에 대해 보상하는 ‘사후보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KDI 포커스 ‘신종 금융상품의 고객자금 보호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금융혁신이 가속화되면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 네이버페이 등이 제공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P2P대출 등 새로운 금융상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상조 계약은 새로운 금융상품은 아니지만 인구구조의 변화로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향후 그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중요한 산업군으로써 ‘유사 금융상품’으로 포괄해 보호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KDI는 보고서 서두에서 신종 금융상품은 기존 상품과 달리 새로운 편익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첫째, 가상자산은 시장 가격이 주식, 채권 등 전통자산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전통자산을 대체·보완하는 새로운 투자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고, 둘째로 간편결제 간편 송금은 모바일에서 간단하고 신속하게 물품대금을 결제하고 자금을 이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점이 있다고 전했다.
또한 상조 계약의 경우 일생 동안 발생하는 지출 가운데 3~4번째로 큰 지출인 장사비용과 관련이 있다며 평균 장사비용이 지난 2015년 기준 1380만원이었고, 최근에는 이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돼 선불식 상조계약에 가입하면 물가상승 이전에 대금을 납입하므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계약자 생전에 어떤 상조물품과 서비스를 사용할지 미리 결정해 두기 때문에 계약자의 사망 시 유족이 큰 어려움 없이 대처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KDI, "상조시장 성장세 주목해야"
다만 KDI는 이들 상품은 거래 과정에서 고객의 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사후보호책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가상자산, 디지털 간편결제, 상조계약 등은 모두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업체가 고객의 자금을 수취했다가 고객이 요청하면 돌려줘야 하는데, 이런 고객 자금을 문제없이 돌려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과거 머지포인트 사태, 최근의 티몬 사태, 상조업체의 폐업 사례, 그 밖에 해외의 피해 사례는 유사시 고객자금이 상실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가상자산, 디지털 결제, P2P 대출 예치금, 상조 계약 자금의 합계는 지난해 기준 약 18조원으로 나타났다.
상품별로는 상조계약 선수금이 약 9조원으로 가장 많고, 가상자산 예치금도 약 5조원에 이른다. 상조계약 이용자는 864만명으로 2023년 기준 전 국민의 17%에 해당한다. 국민 6명 중 1명이 상조업체에 선수금을 맡긴 것이다. 가상자산 이용자 수도 645만명으로 많다.
KDI가 전망한 성장세가 특히 주목되는 상품은 단연 규모가 가장 큰 상조 계약이라고 내다봤다.
KDI에 따르면 상조 계약은 계약자 사망 시 상조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사망자 수가 수요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의 사망자는 지난 2011년 26만 명이었으나 이후 추세적으로 증가해 2022년에는 37만 명을 기록했다. 2023년에는 사망자가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고령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증가해 2060년에는 무려 75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KDI의 회귀분석 결과, 사망자 수가 1만 명 증가할 때 상조계약 이용자 수는 45만 명 증가하고 선수금도 6000억원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향후 사망자가 40만 명 가까이 늘어날 것을 감안하면 사망자 1만 명당 이용자 및 선수금 증가폭을 작게 잡아도, 수년 내 이용자가 1000만 명을 넘어서고 선수금도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KDI, 선수금 미예치금 공사가 보호하는 ‘사후 보호책’ 필요성 제기
이러한 4대 자금에 대한 소비자 보호는 ‘별도관리 규제’가 적용되고 있는데, KDI는 이런 별도 규제상 한계가 존재한다며 ‘사후 보호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KDI는 별도관리란 고객자금을 업체의 고유재산과 분리하여 제3의 은행에 예치 또는 신탁하거나 보험사의 지급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한 보호수단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당 규제만으로 고객자금을 완벽하게 보호하려면 고객자금 전액(100%)을 별도관리해야 하고, 파산 위기에 직면했을 때도 별도관리 의무가 준수돼야 하며, 은행 등 별도관리 기관이 결코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KDI는 이 같은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점이자 한계점으로 꼬집었다. 첫째, 관련 규제에 따라 선불충전금, 가상자산 예치금, P2P대출 예치금은 전액 별도관리해야 하나 상조계약 선수금은 50%만 별도관리하도록 하는데, 업체 파산 시 고객자금의 절반이 상실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별도관리 규제는 ‘사전 예방책’으로서 의미가 있으나 사고를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보다 효과적인 고객 보호를 위해서는 업체의 파산 후 고객자금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예금보험공사 등 공적기구가 보상하는 ‘사후 보호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KDI에 따르면 해외 주요국가의 경우 이런 신종 금융상품 관련 고객자금을 사전 별도관리 규제와 함께 사후 보호제도를 통해 이중적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은 기존의 예금보험기구를 확대 개편한 금융서비스보상기구(FSCS)가 선불충전금과 상조계약 선수금을 보호하며, 미국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선불충전금, 가상자산 예치금, 상조계약 선수금 등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이에 KDI는 구체적인 ‘사후보호책’으로 예금보험공사가 고객을 보호하는 ‘직접보호제도’와 ‘별도 예치된 자금만’ 공사가 보호하는 ‘간접보호제도’의 특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보호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직접보호제도에서는 예금보험공사가 은행 예금을 보호하는 것처럼 신종 금융상품 관련 고객자금을 직접 보호한다. 업체 파산 등으로 고객자금 손실이 발생하면 공사가 일정 한도까지 보상한다.
다만 이 경우 은행에 별도 예치돼 비교적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는 고객자금과, 업체가 자체적으로 관리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위험한 고객자금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보험료가 부과된다. 따라서 업체들은 안전하게 보관 중인 별도 예치금에 대해서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낄 것이며, 보험료가 고객에게 전가될 가능성도 있다.
간접보호제도에서는 공사에 보험료를 납부할 의무가 없고, 업체 파산 시 공사가 고객을 보호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업체가 은행에 별도 예치한 고객자금을 고객 본인의 예금으로 간주해 기존의 ‘예금보험제도’를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간접보호제도에서는 업체가 보험료를 내지 않기 때문에 업체의 부담도 없는 한편, 고객에게 보험료가 전가될 수도 없다. 하지만 이 경우 전체 자금이 보호받을 수 없고, 은행에 별도 예치한 고객자금에 한해서만 보호받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절충안으로써 KDI가 제시한 ‘하이브리드 보호제도’는 은행에 별도 예치된 고객자금은 간접보호하고, 그 외 고객자금은 직접보호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한 고객자금의 전체를 보호가능하다는 논리다.
예컨대, 전체 고객자금 100억원 중 업체가 70억원만을 은행에 별도예치한 경우, 업체는 이 70억원에 대해서는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고 나머지 30억원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납부하게 되고, 고객은 업체가 파산하든 은행이 파산하든 상관없이 항상 보호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업체가 파산하고 은행이 파산하지 않은 경우, 별도예치되지 않았던 30억원에 대해서는 예금보험공사가 고객 1인당 한도까지 보상하게 되며 별도예치된 70억원에 대해서는 파산하지 않은 은행에 보관돼 있으므로 고객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다.
반대로 은행이 파산하고 업체가 파산하지 않은 경우엔 은행에 맡겨졌던 70억원에 대해 공사가 1인당 한도까지 보상하며, 나머지 30억원은 파산하지 않은 업체가 고객의 요구에 따라 반환하게 되며, 업체와 은행이 모두 파산하면 나머지 주체인 ‘공사’가 100억원 전체에 대해서 1인당 한도까지 보상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 보호제도 도입 시 상조업체 미예치금 보험료 등 부담 증가
소비자 보호 아닌 피해 양산 부작용 우려도
KDI 측은 이러한 하이브리드 보호제도를 통해 별도예치 하는 경우 업체의 ‘보험료 부담이 낮다’는 점을 이점으로 꼽지만 상조산업의 경우, 현실적인 여건 등을 감안하면 적용하기 어렵다.
해당 제도에 따라 상조업체가 보험료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기존 별도예치된 50%의 선수금 외에 나머지 자금을 모두 별도 예치해야 하는데, 이를 통해 보험료 부담이 낮아질지언정, 업체의 자산운용을 통한 외형 성장이나 마케팅 개발 등 판로 개척, 무엇보다 물가인상에도 소비자가 가입한 당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조업체의 가장 큰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특히 상조업체의 경우 일반기업과 달리 서비스 제공을 통해 발생하는 ‘매출액’보다는 ‘선수금’이 사실상 주수익원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료 부담까지 떠안게 되는 것은 각종 규제 부담으로 인해 상조산업의 부담이 이미 적지 않은 여건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시기상조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 같은 상조업계의 여건에 대해 KDI 측은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의 경우 선수금의 100%를 별도관리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 비율을 이들과 같이 100%까지 올리는 것 보단 하이브리드형 보호제도가 오히려 업체의 부담이 덜하다”고 주장한다. 즉, 산업의 규모가 커져가는 만큼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규제는 불가피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런 KDI와 마찬가지로 최근 상조시장을 둘러싸고 선수금 절반을 활용한 자산운용에 대해 규제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국회 등 일각에선 아예 선수금의 100%를 예치해, 상조업체의 자산운용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이 들려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규제의 취지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작정 메스를 들이댄다고 소비자 피해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아지거나 그럴 가능성이 커진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난 2010년 법제화 이후 숱한 규제의 시험대로 삼아왔던 상조산업의 격했던 성장사가 이를 방증한다. 더욱이 상조산업은 사전 예방은 물론, ‘내상조 그대로’, ‘내상조 찾아줘’, ‘내상조 알림제도’와 같은 다양한 안전망으로 사후 보호책 역시 만전을 기하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선 새로운 규제보단 업을 안착시키기 위한 육성책이 더욱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업계의 현실을 반영한 정책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